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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현존 | 이재경목사 | 2010-01-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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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교회의 현존 본문 : (행 2:42-47)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오늘 본문 말씀(행2:42-47)은 모여서 예배하고 배우고 기도하고 교제하고 피차에 나눔이 있는 초대교회의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과오를 범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2000년 역사를 거치면서 인간역사의 최후의 보루로 그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러한 교회의 현존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교회됨을 이루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늘 함께 했고 작금의 신앙에도 늘 함께 해야하는 것은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그 교회의 현존(現存)은 “기도”입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생활은 교회의 현존입니다. 기도시간에만 역사가 나타나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해야만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역사에서 큰 일을 감당했던 크리스챤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하는 시간보다, 기도하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보통 바빠서 힘들어서 여유없어서 기도시간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만,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그의 책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에서 바쁘고 힘들고 여유없기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 강조합니다. 1517년 독일마인츠대주교의 면죄부판매를 비판하면서, 비텐베르크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마틴 루터는 그 힘들고 어렵고 목숨을 건 싸움에서도 하루에 4시간씩 기도했다 합니다. 특히 1521년 보름스 국회에서 파문당할 즈음에는 교회의 강한 성벽이요, 기독교의 가장 강한 무기라 말하며 종교개혁의 큰 획을 긋기도 했습니다. 마가복음 9:17-29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벙어리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하며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데려 오라고 하십니다. 아이의 아비가 말하기를 주님....할 수 있거든 불쌍히 여겨 도와 주소서...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며 꾸짖으십니다. 아비가 소리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주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명하시며 고쳐주십니다. 제자들이 와서, 주님게 묻기를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주님게서 말씀하시기를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십니다. 기도없이는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26:40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주님께서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고 책망하십니다. 기도를 해도,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땀 흘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오늘 기도시간 채웠다..... 오늘 밤 예배/기도회에 참석했으니까 이정도면 됐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회에 참석하면, 큰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힘이 쎈 사람은 음식도 잘 먹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많이 먹고도 힘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이 비대해진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예배드리고, 설교듣고, 은혜받으면서도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신 말씀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그 어떤 사탄의 시험도 이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통해 감동을 받고도, 그것으로 기도하지 못해, 무능력한 신앙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딤후 3:5) 디모데에게 이같이 권면합니다.『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했습니다. 땀흘리며 열심히 전심으로 기도하는 기도만이,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성전미문에 앉은뱅이가 육신의 회복과 영적인 회복을 경험하는 때도 역시 기도의 시간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제구시(오후3시)쯤에 기도하러 갔다 했는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정기적으로 아침9시에 정오에 그리고 오후3시에 세 번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말이 그렇지 사실상 거의 하루 종일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 사도베드로와 요한의 기적에 관심을 갖지만, 사실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기도하는 시간이요, 땀흘려 기도하는 모습이요, 바쁜 중에도 하루 종일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에 앉은 뱅이가 실제로 일어서고 구원받는 은혜와 기적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살림교회도 기도하는 중에 은혜를 경험하고 기적을 경험하는 성도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 종일 기도하는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 교회 초대교회였습니다. 예수님도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라 말씀하셨습니다(막11:17). 결국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베드로를 통해서, 모이는 일, 배우는 일, 사역하는 일, 전도하는 일을 통해, 3000명이라는 숫자로 불어났습니다. 둘째로는 그리스도가 드러날 때 역사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하시며, 잡아 일으키셨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 12절 이하를 보면, 모든 백성이 성전에서 걸으며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앉은뱅이를 보며 기이히 여겨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솔로몬 행각에 모였들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어찌하여 우리 경건과 권능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그 이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많은 교회의 활동(섬김, 구제, 봉사, 등등)이 있었으나, 주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낼 때, 그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와 기도했지만, 그들중, 성경에 기록된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왜 그 많은 사람들중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록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그러한 기적을 체험한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추앙하려 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신앙이 없이, 예배 교육 봉사 구제 섬김 등등의 모든 사역이 진행된다면, 깨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며 싸워 이겨야 합니다. 예전에는 섬김과 봉사는 큰 교회만 하고 작은 교회는 못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교회의 시설면에서도 농천교회와 도시교회와 차이가 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 기도하며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교회의 현존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하던 중 응답이 없자, 내 기도제목이 이루어지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 말하며 의기소침해져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골수를 쪼개는 한 마디 말이 들려왔습니다. 내 기도제목을 하나님이 응답하시어 성취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원을 내가 이 땅에서 이루는 것은 “더 어려운 기적”이요, “진정한 기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소원을 아뢰는 것에 기도의 내용을 집중합니다만,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는 일에 기도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곳에 은혜가 있고, 치유가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가 드러날 때,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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