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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6_사망권세 이기는 믿음 | 이재경목사 | 2020-04-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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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망 권세 이기는 믿음 본문 : 렘 13:15-16, 요 5:24-25, 고전 15:50-58 (렘 13:15-16, 개정) [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16] 그가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요 5:24-25, 개정)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고전 15:50-58, 개정)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할렐루야! 지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샬롬!샬롬! 부활주일 셋째주일을 맞습니다. 주님은 사망 권세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은 죽는 것이요,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과 단절이기에 두려움이요, 그리고 마지막을 말합니다. 그래서 속담에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 보다 이승이 좋다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조어“9988234”는 99살까지 88하게 살다 2-3일 아프다 편안히 죽자란 의미인데, 요즘에는 99세까지 88하게 23살처럼 사랑하며 살자! 뜻이 유행이랍니다. 그러나 이 속담이나 신조어의 공통점은 인간은 행복한 죽음을 소망하지만, 그 어느 인간도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죽음 문제, 사망권세는 그 어느 인간,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주님은 그 모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음을 기록합니다. 사도 바울은 한 사람으로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기 때문에(롬8:12) 부활도 한사람으로 말미암이 시작된다 (고전15:12) 증언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히11:12에서“죽은 자 같은 한 사람, 아브라함”, 그는 생명 잉태가 불가능한, 죽은 자 같은 사람이었지만,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사망 권세 이겨 내고, 하늘의 허다한 별과 해변의 무수한 모래알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다 했습니다. 오늘 주신 세가지 말씀도 사망 권세 이기는 힘은,“오직 믿음” 뿐임을 증거합니다. 렘13장에서 예레미야는 사망 권세 앞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라 선포하고, 요5장에서 주님은 내 말 듣고, 아버지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짐을 선언하셨습니다. 고전15장에서 바울은 혈과 육의 율법을 뛰어 넘어 부활 믿음으로 오직 주의 일에 힘쓰라 했습니다.“사망 권세를 이기는 믿음”에 대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오늘 첫째 말씀은, 사망 권세를 정복하라 입니다. 오늘 세가지 본문은 사망과 사망권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망 권세를 예레미야는“죄에 대한 하나님 심판”이라 했습니다. 주님은“하나님 심판으로 회복 불가 상태”라 말씀하십니다. 바울은“혈과 육에 따른 인간의 생각, 율법”이라 했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사망 권세를 그토록 싫어해도, 그것을 정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고민하고 기도해본 결과 저의 소견은“믿음의 부재”입니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인데요, 사람들은 사망 죽음, 듣기만 해도 싫은 단어 인데, 그토록 싫지만, 우리는 우리 일상 생활에서“사람을 살리는 말, 살리는 행동”보다,“죽이는 말, 죽이는 행동”을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이라 말하지만, 엄밀이 보면 믿음의 부재입니다. 믿음이 없기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고, 두려움 때문에 죽이는 말과 죽이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혈과 육의 원리, 약육강식 원리에 따라, 나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말을 할 때가 많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거나 과시하다 보면, 타인을 굴복시키거나, 상처입히는 상황이 생기곤 합니다. 한번쯤, 살리는 말, 축복의 말을 해도, 지난 과거의 불신 상황 때문에 축복으로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생명과 영혼을 살리는 말은 사라집니다. 끊을 수 없는 혈육관계 부모의 자녀 사랑도 사망 권세 앞에 단절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시간 흐름 따라 더 깊은 사망의 골짜기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저 사망 권세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했습니다. 사망 권세란 무엇입니까? 율법에 갇혀, 자기자신에 갇혀, 세상 권세에 갇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못하고, 주님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은 죄의 권능인 율법 안에 갇혀,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고, 그것을 합리화 하려고, 이방인과 사마리아인들을 정죄하며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냈습니다. 렘13:16에 예레미야는 교만한 남유다가,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기 전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 했고, 요5:24에 주님은 사망권세에 짓눌려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생명을 얻으라 말씀하셨고, 고전15:50 사도 바울은 혈과 육에 집착하는 한, 율법주의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날, 이단 신천지도 우리와 비슷하게 사랑한다 말하지만, 그 입술에서 예레미야의“회개”는 없습니다. 사망권세에 짓눌려 있는 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혈과 육에 집착하는 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회개 없이, 사망권세에짓눌려 혈과 육에 집착한다면 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망 권세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 주님 말씀처럼,“주님 말씀 듣고, 아버지 하나님 믿고 따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사망 권세를 정복하려면 수1:9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처럼, 말씀 듣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두려워말라”는 말씀은 성경에서 518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습3:11 교만치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회복하시는 날, 교만치 않는 믿음의 사람만 남길 것이라 했습니다. 성경은 교만치 말라는 말씀을 132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사망 권세를 이기려면, 두려움 극복하고, 교만치 않게 하옵소서. 기도제목입니다. 기도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는 하나님 향한 변치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사망 권세 극복 위해“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믿음”을 선포합니다. 주님도 죽은 자들이 아버지 음성 들을 때가 오기 때문에 변치 않는 믿음 가지라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 따라 우리도 부활되기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라 헛되지 않으리라! 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변치 않는 믿음”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레미야처럼, 회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눅15:10에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 사자 앞에서 기쁨이 되리라 했습니다. 주님은 나 자신의 믿음 위해 항상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막9:24에 죽은 아들의 아버지가“주님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기도할 때, 주님께서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기도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 따라 나의 부활을 대망하며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되, 끝까지 하라 편지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끝까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4월 26일, 4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영국 시인 T.S 엘리어트는 [황무지/The Waste Land,1922]에서“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습니다. 4월은 겨울 뚫고 새싹 나며, 꽃피는데 왜 잔인한지 답이 쉽지 않습니다. 1922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한 유럽을 바라보며, 새싹 그리고 꽃을 상징화한 작품입니다. 잔인하지만, 힘들겠지만, 두렵지만, 사망 권세 이기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베드로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했습니다. (사40:8, 벧전1:24) <코로나19바이러스>로 석달 동안 우리는 동역자, 건강, 물질 등등... 많은 소중한 것을 잃었습니다. 힘들지만, 두렵지만, 잔인하지만, 오늘 주신 말씀 “사망권세를 이기는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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