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강 베드로전서(4) 크리스챤의 고난과 영광 | admin | 2013-01-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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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강 베드로전서(4) 크리스챤의 고난과 영광 (벧전 3:13-22, 개정)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벧전4:7) 올 때 교회에 다가오는 핍박과 고난은 더욱 커지고 교회를 깨뜨리기 위한 마귀의 흉계는 더욱 커집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신앙 생활하여 살아가야 하고 교회는 더욱 견고해져야 하며, 이러할 때 심판의 날에 교회는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1. 열심히 선을 행하라(벧전3:13-22) 그리스도인들은 이 고난의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난을 피하기 위하여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살아갈 것인가? 이러한 삶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의 논쟁에 침묵으로 일관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답변할 것인가? 또 '옥에 있는 영'(벧전3:19)은 누구이며 이들에게 전파하였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봅겠습니다. 1) 그리스도를 변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벧전3:13,17). 즉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고난이 무서워서 피하여 숨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변증가가되어야 한다 말합니다. 변증이란 반대자들에게 자기가 생각한 바를 옳다고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우리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를 피하지 말고 열심히 변증하여 설득해야 합니다. 벧전3:19-20은 매우 해석하기가 난해한 구절로 학자마다 다른 의견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아의 때의 사람들이 매우 악하였다는 것과 그리스도는 죽음에 대한 승리자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선을 행하고 불신자에게 답변해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벧전3:18-22에 기독론을 삽입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도피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을 행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믿는 것입니다. 2. 복 있는 자의 고난(벧전4장) 세상은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들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합리화하고 우리들의 거룩한 삶을 비방하여 우리를 이유 없이 핍박합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1) 고난이 있으나 반드시 복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믿기 전의 지나간 때의 죄악을 그치고 성결한 삶을 명령합니다. 이러한 삶 가운데서 다가오는 불시험과 고난에 대해 오히려 즐거워해야 하며 복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보답은 구원으로 주어집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 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선포합니다(벧전4:7). 악한 세상에서 성결하게 살고자 고난을 이겨낸 자에게는 심판날에 구원을 입었으나 악한 자에게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술집, 음란 비디오, 도박장뿐 아니라 철학이라는 이름하에 온갖 우상 숭배가 횡횡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도 조상 제례 문제는 명절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이 부딪치는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만물의 때가 가까웠음을 깨닫고 심판날에 구원의 은혜가 있음을 깨달아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자는 복 있는 자라며 베드로는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3. 영광에 참예할 교회(벧전5장) 사탄은 마지막이 가까워 올수록 교회를 더욱더 괴롭힙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면류관을 심판날에 쓰기 위하여 교회는 더욱 견고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지역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의 역할과 자세는 무엇이며, 젊은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견고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한 마을을 지도하는 장로라는 지위는 유대 전통에서 뿐만 아니라 헬라-로마 문화권에서도, 아프리카의 부족 사회에서도 그리고 우리 나라의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개신교의 장로 제도는 칼빈의 종교개혁에 그 기원을 둡니다. 베드로 자신도 장로라 하였으니 이 장로는 곧 개신교회의 목사와 같은 위치입니다. 목사들에게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모범을 보이라 합니다. '더러운 이'에 대하여 웨슬리(John Wesley)는 더 좋은 조건과 봉급을 따라 교회를 옮기는 목회자들을 경고합니다. 내일의 교회의 지도자들인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혈기와 정열만 믿고 권위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 장로(목회자)들의 경륜에 겸손해야 합니다. 마귀는 교회의 질서를 깨기 위하여 성도의 삶과 가정 그리고 사회를 파괴하기 위하여 호시탐탐 우는 사자와 같이 노리고 있으므로 교회는 더욱 믿음 위에 견고히 서야 합니다.
2) 깨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대접받는 좋은 직업이 된 이 시대에 목회자는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직업이 주는 안정감보다는 사명감에 불타야 할 것이며, 또 젊은 청년 집사들은 자신의 짧은 신앙에 근거하여 교회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교회는 더욱 질서 가운데 견고해져야 합니다. 1장 서두에서 흩어져 있는 교회에 이 서신을 쓰고 있음을 밝힌 베드로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교회에 대한 권면과 격려로 서신을 끝맺고 있습니다. 즉 만물의 마지막이 다가옴에 따라 교회는 더욱 견고해져야 하며 고난과 역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이러할 때 심판날 영광에 이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바벨론에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벧전5:13), 많은 학자들은 이 바벨론이 로마를 지칭하는 은유적 표현이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즉 부도덕, 사치, 방종의 죄악이 넘치고 교회에 대한 핍박이 가장 강한 로마에서 베드로는 이 서신을 소아시아를 비롯한 모든 교회에 보내고 있습니다. 만물이 가까워 올수록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가운데 복음을 위하여 국가, 사회, 가정의 질서를 지키고 교회를 견고케 하여 심판날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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