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11 겸손의 영성 | 이재경 | 2016-03-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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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훈련11 : 겸손의 영성 (요 12:12-19, 개정)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슥 9:9-12, 개정)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빌 2:1-11, 개정)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주님의 호칭 중에 ‘겸손의 왕’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낮추어서 죄인과 병자, 세리의 친구가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왕’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겸손’입니다. 세상의 왕은 마음만 먹으면 부와 명예 권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누리는 왕, 그 왕이 겸손을 말한다 해도 아무도 그것을 진심으로 여길 리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겸손은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겸손을 영어로 ‘휴밀리티’(Humility)라 하는데, 이 단어는 라틴어 ‘후무스’(Humus)로, ‘땅’을 의미합니다. 겸손이란 땅처럼 사는 것입니다. 땅처럼 낮아지는 것입니다. 땅은 모든 것 아래에 있습니다. 하늘 밑에 있고, 나무 아래 있고, 사람과 짐승 밑에 있으며, 식물들 밑에 있습니다. 가장 밑에 자리 잡고 있으며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비와 눈은 물론, 아무렇게 내뱉는 가래침, 오물 등등도 받아드립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받아 드린 모든 것을 소화시키고 분해시키고, 안으로 곰삭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냅니다. 이런 엄청난 생명의 잔치를 벌리면서도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이렇게 생명을 키워내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이렇게 겸손하게 되면, 몇 가지 삶의 변화가 있습니다. 1. 겸손은 변화를 만듭니다. 첫째. 여유와 유머가 생깁니다. 겸손의 삶의 자세로 우리 모두가 한 줌 흙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갈 운명임을 깨닫는다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우스꽝스러운 잣대와 기준에 얽매여 울고불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유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유머 감각이란 상대방을 비하하는 농담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런 태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둘째. 어린이같이 천진하고 단순하게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겸손은 인간의 허위의식과 허영이 만들어 놓은 허깨비 같은 세계가 아니라, 진정한 세계를 보게 합니다. 하늘이 보입니다. 하늘의 구름이 보입니다. 나무가 보이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이름모를 꽃들이 보입니다. 이 세계가 역어내는 우주적 합창이 들립니다. 그러니 언제 어디에 있건 마음이 평화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호산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어린나귀’를 타고 계셨습니다. 분명 왕이 입성하는 형식을 갖췄지만, 이전에는 없던 겸손의 왕의 모습이어었습니다. 2. 겸손은 평화를 만듭니다. 나귀를 타고 오시는 구원자에 대한 소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구약성경에 씌여 있습니다. 스가랴 9:9-10에 주님을 두고,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선포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실 구원자가 ‘겸손하다’는 것과 ‘화평을 전할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강함은 결코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높아짐으로는 세상을 화평케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높아지면 분명 누군가는 낮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높아지려 하면 분명 갈등생기고 싸움일어납니다. 주님은 화평을 전하는 사명을 위해 겸손하고 낮은 왕이 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가 겸손함으로 세상에 평화를 심었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주위를 둘러 보십시오. 나보다 낮은 자가 있습니까? 더 겸손한 사람이 곁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높음을 회개하고 자신을 그보다 낮추어야 합니다. 겸손이 만드는 변화와 평가가 우리 모두의 삶에서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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