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02 생명훈련2-12 고난의 주님 | 마26:63-68 | 이재경목사 | 2025-03-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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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고난의 그리스도
(마 26:63-68, 개정)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하루 24시간 중 예수님은 무려 여섯 차례 심문을 받습니다. 바리새인에게 대제사장에게 헤롯왕에게 로마인에게 마지막에는 그리고 마지막 로마 총독으로부터 십자가 형을 선고 받습니다. 1.홀로 서신 주님 주목할 점은 예수님 편은 누구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를 변호하고 나서는 증인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이 재판의 부당함에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 자신도 스스로 변호하지 않았고 하나님도 역시 침묵하셨습니다. 또한 재판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아무도 예수님 십자가 처형의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예루살렘 소요 사태 책임을 떠 넘기려 합니다. 본인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유대지도자들, 예루살렘 치안을 지키려는 로마인들, 예수님은 그저 그들에게 위협이 될 뿐이기에 희생양으로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은 무죄라 말했지만 그런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 무죄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나는 나의 사적 이익이나 개인적 입장을 챙기지는 않는다 말하면 의인 행세를 하지만, 진실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 아닐가요?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53: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우리는 Christ를 따르는 Christian! 2. 심문 막바지 심문에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증언의 맹세를 요구합니다. 63절“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라는 말로 질문하면 반드시 진실 된 답을 해야 하는 율법 규정이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은“네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여기서 예수님은 처음으로 침묵을 깨고 64절 답합니다.“네가 말하였느니라!” 또한 예수님은 한술 더 떠서 사람의 아들이 구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는 말마저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이고 신성 모득에 해당되었습니다. 이에 75장 대제사장은 옷을 찢으며“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격분하여 소리칩니다. 로마 입장에서는 신성 모독이니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란 말은 왕을 뜻했고 로마가 그런 호칭을 공언하는 자를 그냥 놔둘 수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헤롯과 예수님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헤롯은 간사한 호기심으로 예수를 보기 원했습니다. 그 헤롯 앞에서 주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오직 빌라도만 간단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빰에는 군인들의 손자국이 난 채로“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눅23:3) 질문에 “네 말이 옳도다!” 대답했던 것입니다. 이전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실 수 있는 기회를 버리셨습니다. 고침받은 사람들, 심지어 귀신들까지 그를 메시아로 알아 보았으나 그때 마다“잠잠하라!” 했습니다. 한때는 군중들이 떼를 지어 주님 따라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신 일은 자신을 숨기는 일이었습니다. 드디어 심문현장, 그가 무슨 말 해도 다 어리석게 들릴 자리에서 비로소 자신을 시인한 것입니다. 종교 권력 앞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로마 총독 앞에서는 왕이라고 말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는 일입니까? 빌라도는 아마 로마에서 겁도 없이 자기가 시저라고 떠드는 미친 자들을 연상했을지도 모릅니다. 모두에게 거절당하고 주변에 아무도 편드는 이 없는 때에 예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라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때였습니다. 이를 두고 훗날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애가 되는 돌, 한쪽에 제쳐둔 돌, 건축가가 성가신 돌, 그러나 이 세상의 힘과는 다른 하나님의 힘으로 이 돌은 결국 새 왕국, 하나님 나라 천국의 모퉁릿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대개 심문 기간 중 왜 침묵하셨을까요? 자신의 변호나 안일이 아니라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입장과 로마인들의 입장은 달랐으나 무엇에 일치되었습니까?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이나 기존 질서가 훼손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 자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만드는 모양새입니다. “고난의 그리스도”는 우리 삶을 다시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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