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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7 주일예배 |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사랑을 바라보자! | 욥37:14-24 | 마14:22-33 | 롬9:14-26 | 시1편 이재경목사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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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사랑을 바라보자!

37:14-24 | 14:22-33 | 9:14-26 | 1:1-3

 

(37:14-24, 개정)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15]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16]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17] 땅이 고요할 때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그대가 아느냐 [18]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 [19]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그대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노라 [2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 [21] 그런즉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22]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23]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14:28-33, 개정)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9:14-26, 개정)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1:1-6, 개정)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오늘은 9월 넷째주일, 한가위감사주일, 창조절 넷째주일입니다.

금년 추석은 코로나19로 부모님을 찾아 뵙지 못할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모이는 예배도 쉽지 않아, 각 가정 처소에서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교우님들도 있습니다.

모이기 어렵지만, 모일 수 있다면 특별한 예배, 모이지 못했지만, 마음 모아 예배한다면, 더 애뜻한 예배와 만남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4:24에 주님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그곳이 예루살렘 성전이든 그리심 성전이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셨습니다.

 

본래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당신과 만날 수 있는 제사 규례를 주신것입니다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게 하신 것은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긍휼헬라어 λεέω엘레에오는 인간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하나님 자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은 하나님 긍휼하심에 감사해야 하고, 피차에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오늘은 긍휼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 37 중재자 엘리후를 통해, 긍휼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이요, 14, 베드로의 믿음과 의심 양면을 통해 속단하지 말라는 말씀이요, 9긍휼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모든 일에 속단 말고, 긍휼의 하나님을 바라보라!”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모든 속단 하지 말고, 긍휼하신 하나님과 그 사랑을 보시기 원합니다.

 

인간은 현실문제인식이 있기에 미래해결희망을 꿈꾸며 삽니다. 오늘날 시대를불확실성시대 속단 예단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기에 위험합니다. 물론 위험하지만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문제는 현실인식있지만, 희망없는것이 문제, 희망있지만 현실인식 없는것이 문제입니다. 현실인식 있는 사람은 신중하지않고 현실 인식 없는 사람은 안일하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최고 창조물인 이유현실 문제 인식과 미래 해결 의지를 동시에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런 능력을 가졌음에도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아담처럼 실패하여 에덴동산에서 쫒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담 뿐 아니라 그 어떤 인간도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일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것을 가장 가볍게 여기고 속단 예단 하고 있는 것입니다사실 가장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쉬운 것도 가장 어려워지는 것이며, 그런 일은 의외로 적지도 않습니다.

 

37:14에 엘리후가 욥의 친구중 가장 연소하기에, 신앙 선배인 욥과 친구의 중재자로서 신중하게 말합니다.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십시요!”이 권면은 고난 중에 속단 말고, 감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자중하고 진중히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중재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엘리후는 훌륭한 영성을 가진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엘리후가 15절부터 24절까지 하나님 섭리를 언급하면서, 욥을 타박하고 정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좀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리에게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만,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문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문제를 가볍게 여길 때, 생기는 문제입니다. 약간 자신감 생기면 언제든지 가볍게 생각하곤 합니다.

 

14:28에 베드로가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고백할 때, 주님은 허락하셨고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 주님께로 가는확신 있는 믿음의 소유자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소유자 베드로가 30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바다에 빠지는믿음이 적은 자로 나옵니다. 베드로의 믿음을 어떻게 보야 할까요? 베드로 마음을 좀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주님은 31절에 분명히 말씀하십니다.“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의심했기에,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주님 바라 볼 때는 바다를 걸었지만, 바람을 바라 볼때, 바다에 빠진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 바라 보지 않고, 바람을 보는 순간, 주님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왜 주님 대신 바람을 바라 보았을까요? 바다를 걷고 있는 자신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왜 확인하고 싶어 합니까? 자기 능력을 다른 동료 제자에게 보여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 보다 자기 자신을 더 소중히 생각할 때, 생기는 문제입니다. 인간은 타인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려는 순간, 오만에 빠지며, 모든 문제를 가볍게 본다는 것입니다. 속히 자신을 확인하고픈 마음에, 속단 예단하며 자기를 드러내며 주님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벧전1:3-9 베드로는 산소망 설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는 것이라 고백합니다만, 문제는 불확실 속에 살면서, 한시라도 주님을 바라 보지 않는다면, 모든 문제를 가볍게 여김으로, 불필요한 분쟁속에 휘말려 사랑도 잃고, 사람도 잃고, 모든 일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 주님 바라보며, 모든 가족들에게 위로와 소망과 사랑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성도가 되시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성도는, 고난 중에도 진중히 하나님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42:6에 하나님이 엘리바스 빌닷 소발 보다, 욥을 의롭다 인정하신 이유는 욥이 죄를 짓지 않았거나, 의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재산잃고 가족잃고 건강잃고 친구잃은 혹독한 고난 분쟁 중에도 하나님께 회개하였기 때문이요, 그 증거로 8절에,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한 말이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하나님이 직접 말씀해 주셨습니다.

 

약간 난해한 본문입니다만, 욥의 친구들은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 공의를 앞세워 욥을 정죄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 바라보며, 욥의 친구들을 설득합니다. 또한 9절을 보면, 욥이 엘리바스 빌닷 소발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셨다 했고, 10절에 욥이 그의 친구 위해 기도할 때,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의 이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다 했습니다. 욥은 친구를 향해 긍휼한 마음으로 기도하지만, 욥의 친구는 공의는 있으나, 긍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욥이나, 친구들이나,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하나님 긍휼하심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잃어 버린다면, 더 이상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다윗이 하나님 긍휼하심을 알고 회개할 때, 하나님 백성이 됩니다만, 사울은 하나님 긍휼하심을 모르고 회개하지 못했기에, 하나님으로 버림받은 것입니다. 30냥에 주님을 팔아 먹은 가룟유다는 하나님 긍휼을 몰랐기에 회개치 못하고 자살을 택합니다만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는 주님의 긍휼하심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세계적인 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사울이나, 가룟유다 모두 하나님 긍휼하심을 잃었기에, 속단하고 예단하고,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마14장도 베드로가 믿음 과시하려다 실패하는 이유는 베드로가 주님 바라보지 않고, 속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시적인 문제만 보지 말고, 속단하지 말고, 예단하지 말고, 그 상황 가운데, 긍휼히 여시기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이야기도 잘 들어 보면, 틀린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모든 말이 일면적으로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맞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9:14ff에 사도바울도 로마교회에 편지합니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을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16절에 진리는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했습니다.

 

믿음과 행함의 틀 안에서 무엇이 옳으냐로 속단하며 쟁론 삼지 말고, 긍휼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긍휼히 여기실까요? 오직 믿음으로만! 외치는 사람도 아니요, 오직 행함만! 외치는 사람도 아니요, 믿음과 행함을 동시에 가지라! 말하는 사람도 아니요, 그 삶의 중심에 끝까지 주변의 사람을 살피며, 하나님 뜻을 세우는 일에 열심한 사람입니다.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긍휼입니다. 긍휼은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롬9:25절에 호세아를 인용하며,“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하는 자라 부름받게 하는 것이요,”“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이라했습니다.

 

시편1편은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다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않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자라 했고, 그 앞사귀가 마르지 않고, 형통하리라 했습니다오늘은 코로나19중에 추석 명절 주일입니다. 코로나19방역도 난제지만, 국론분열도 만만치 않습니다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이 식어 가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잃어 버리면, 소망이 없습니다.

이번 명절에 하나님 긍휼하심으로 축복된 가족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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