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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4 천안드림교회 주일예배 | 귀 기울이고 나아와 들으라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 사55:1-5, 눅10:38-42 요일1:1-7 | 이재경목사 | 이재경목사 | 2020-10-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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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고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창조절 다섯째주일) 사55:1-5, 눅10:38-11:4, 요일1:1-7, 시43:1-5 (사 55:1-5, 개정)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눅 10:38-42, 개정)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요일 1:5-10, 개정)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시 43:1-5, 개정)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오늘은 10월 첫째주일, 창조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추석 마지막 연휴 주일입니다. 금년 추석은 함께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만나지 못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하나된 마음을 확인하는 추석이었습니다. 물론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해 벌어진 사건 사고도 있었습니만, 마음이 하나 되었다면, 그 어느 추석 보다도 축복된 명절이 될 것입니다. 생각도 중요하지만, 마음은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다르면 마음 모으기가 쉽지 않지만, 마음이 하나 되면 피차 다름을 인정하기에 생각모으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보다 생각앞서면 우리 인간은 즉시 길을 잃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마음이 없다면, 판단도 흐려지고, 방황하고 부작용도 커집니다. 오늘 말씀도 하나님 마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사55장은 소망없었던 바벨론포로기, 하나님이 아무런 조건없이 유대백성을 초청하시는 말씀이며, 눅10장은 주님마음보다 자기생각 앞세운 마르다를 책망하시는 말씀이요, 요일1장은 마음보다 생각을 앞세울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한다디로 요약하면, 내 생각 보다 주님 마음에 귀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첫째,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나아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55:1에 이사야는 오호라! 너의 모든 목마른 자들에 물로 나아오라 돈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설교합니다.“목마르면 나오라!”는 유대백성 향해, 모든 절망과 탐욕을 내려 놓고 먼저 하나님께 나아 오라는 것이요,“돈이 있든 없든 모두 나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잔치이니, 신분 인종 명예 조건 등등, 조건 없이 누구나 오라! 초청입니다. 3절“귀를 기울이라”는 무엇보다 먼저 내 마음을 하나님과 연결하고,“나아와 들으라!”는 먼저 말씀을 들으라!입니다. 바벨론포로 당시상황은, 정치적로는 바벨론인가?메대인가?, 종교적으로는 여호와하나님인가?마르둑인가? 문화적으로는 바벨론문명인가?히브리문화인가? 역사적으로는 사마리안 용서할것인가?차별할 것인가? 개인이중요한가?민족이중요한가? 갈등으로 혼란 절망 중에 유대백성을 초청하시는 하나님 마음이 담긴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기 생각을 내려 놓지 않고, 주님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눅10장, 듬직한 마르다와 철없는 마리아 중에, 여러분은 누가 더 좋습니까? 고민거리요, 논쟁잇슈 입니다. 누가 봐도 마르다인데, 왜? 주님은 성실한 마르다보다, 철없어 보이는 마리아를 더 귀하게 여기셨을까요? 41절에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네가 많은 일로 근심 염려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리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마르다는 여러 면에서 탁월하나, 주님 마음 알지 못했기에, 그 탁월함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철없는 마리아는 생각은 짧았지만, 마음은 주님 향해 서 있었기 때문이요, 마르다는 경륜이 있지만, 자기 생각을 앞세워 마리아의 주님 사랑을 책망하고 주님께 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 짧은 마리아는 앞으로 주님과 교제를 통해, 더 많은 일을 봉사할수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자기 생각 앞세운 마르다는, 생각 짧은 마리아를 무시하며 성토할 뿐만 아니라, 주님 말씀을 들어야 할 제자가 오히려 주님께 명령하듯 하고 있기에, 주님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쁜 일이 있고, 중요한 생각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 마음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크리스챤 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해졌습니다만, 오히려 그것이 신앙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앞에 인간은 그저 죄인일 뿐이며, 아무리 탁월해도, 주님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죄인임을 모른다면, 주님 십자가로 하나님 자녀된 은혜를 모른다면, 더 이상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크리스챤은 주님마음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기생각 앞세워 타인을 심판 정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타인을 정죄하는 순간, 심리적으로 자기 자신은 죄가 없다 착각합니다. 심리적으로 타인을 정죄해야 자신이 의로워지며, 그것을 위해 타인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오늘날 문명사회 일상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기록이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요일1:6ff에 분명히 말합니다.“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을 행하면 거짓말 하며,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거짓교사, 영지주의자에 관한 것입니다. 헬라철학 뿌리를 둔 영지주의는 영적부활만 강조합니다.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자신의 영적우월감을 내세우지만, 자기 자기 육신의 삶에는 변화가 없으며, 육신의 죄를 지어도 그 죄를 인정하지 않기에 회개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일1:7ff에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보혈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지만, 우리가 죄없다 말하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 했습니다. 육체부활(변화)없는 영적부활은 없습니다. 영적부활이 육체부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진리도 아니며,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마음 보다 자기생각을 앞세우며, 교회와 세상을 어지럽힌 기독교역사상 최초 이단이 되었고, 그것이 이단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 귀 기울이고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챤이라 한다면, 세상 어두움에 자기 생각 드러 내기 전에 하나님 마음과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께 귀 기울이고, 말씀 따라 살아 가셔셔, 승리하는 교우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자기 생각을 내려 놓지 않으면 주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문제는 마음과 생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마음은 입술로 드러내지 않은 것, 생각은 드러낸 말들”로 이해합니다만, 그것은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구분할 수 있는 경우에 가능합니다. 흔히 “내마음나도몰라!”“내생각이 맞는지 잘모르겠다!”는 말을 포함하여 마음과 생각을 혼용하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변하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그것을 완전히 구분할수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몇일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코로나19방역을 가볍게 여기며 행동하다가, 코로나에 감염되었습니다. 트럼프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그것참 쌤통이다”좋아했답니다.“쌤통”은 마음일까요? 생각일까요? 대부분 마음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생각에 가까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트럼프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 때문에 생겨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파만파 논란으로 확산 되었습니다. 어제 연합뉴스에 이탈리아 극우 정치인‘마테오 살비니’가 이 사건을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타인죽음기원하는사람은 영혼없는멍청이”라 글을 올렸답니다. 이 말은 마음일까요? 생각일까요? 틀린 말이 아니지만, 특정 의도가 있기에 정치적 논란이 되었습니다.“죽음기원하는사람은 영혼없는멍청이”는“마음”이지만, 정적을 정치적 공격하는“생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혼합된 것입니다. 혼합이라면,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생각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과 생각은 결코 구분하기 쉽지 않으며, 단순히 드러난것과 그렇지않은것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마음을 하나님과 연결시켰고, 생각을 사람과 연결시켰습니다. 요일1:6에 하나님과 사귐있으나, 어둠에 행하면 거짓이며,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은 마음이요, 어둠에 행함은 생각입니다. 마음은 성경에 600회, 헬라어καρδία카르디아, 인간전체의 지적 영적 중심부, 다시말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면 마음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이상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마음과 달리 생각은 인간과 세속 세상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325회, 헬라어νόημα노에마,로“의도된결의”입니다. 의도된결의에 반할때 화내는이유는 인간과 세속 이권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이단 영지주의자들은 초대교회 내에 헬라철학으로 패권을 얻으려다가 이단에 빠졌습니다. 마르다가 주님 마음 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울 때 꾸중을 들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하나님 초청에 응답하지 않고, 절망과 탐욕으로 무너지는 것도, 마음보다 생각이 앞서서 실패한 것입니다. 시43:5에“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했습니다. 시편기자 다윗은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고백합니다. 다윗이 수많은 혼란중에 실수 실패 그리고 무능력 중에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오늘 말씀,“하나님께 귀 기울이며, 나아와 말씀을 들으라”말씀으로 오늘의 모든 문제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 나를 건지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나의 힘이요 우리의 힘이십니다. 거룩한 산,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기도함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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