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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1 주일예배 |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 신32:7-12 막8:1-9 행14:8-18 | 이재경목사 | 20201011 | 이재경목사 | 2020-1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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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신32:7-12 막8:1-9 행14:8-18 시70:1-5 (신 32:7-12, 개정) [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8]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막 8:1-9, 개정)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행 14:8-18, 개정)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시 70:1-5, 개정) [1] [다윗의 시로 기념식에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3]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4]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오늘은 10월 둘째주일, 창조절 여섯째주일입니다. 어느덧 가을, 일교차가 심해져서, 산야는 단풍으로, 들녘은 황금빛 추수 계절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19소멸과 정치 경제 군사 문제가 남아 있지만, 힘겨웠던 무더위 장마 태풍은 잊혀지고, 풍성하게 무르익은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임을 확인하며, 좀 더 성숙한 결실을 맺고, 다가오는 겨울을 잘 대비하는 성도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숙한 결실를 위해서는, 오묘하시고 신비로우신 하나님의 섭리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말씀이요, 복음서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베푸시는 말씀이요, 서신서는 성령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를 인도하시는 말씀입니다. 신앙근본문제는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 관계이지만, 하나님은 주님과 성령을 통해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그 풍성한 역사를 보고, 성숙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신32장은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선민 이스라엘, 출애굽3세대를 향해, 눈동자 같은 하나님 돌보심을 증거하는 말씀이요, 막8장은 주님께서 오병이어에 이어 칠병이어로 사천명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를 남기신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 뿐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주님의 긍휼을 보여주시는 말씀이요, 행18장은 성령께서 루스드라(오늘날 터키 지역)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이방인에게 주님을 증거하시는 말씀입니다. 000성도님이 봉독하신 오늘 말씀은 하나님은 한분이시지만,“하나님 돌보심”과“주님 긍휼하심”과“성령 품성”세부분입니다만, 공통점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차에 질문하고 대답함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 말씀에 더 가까이 다아가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소통이 쉽지 않은 다원화 시대에,“나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십니다. 창3:8-10에 아담이 바람불 때, 하나님 소리를 듣고, 하나님 낯을 피해 숨었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아!네가어디있느냐?”부르시고, 아담은“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대답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소통이 중단되었을 때, 하나님은 질문과 대답으로 아담과 하와를 다시 이끌어 내셨고, 계속되는 대화 속에서 나뭇잎 대신에 가죽 옷을 입혀 주시며, 하나님 당신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 말씀 신32장에 모세는 출애굽3세대에게“네 아버지와 어른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설명하고 말하리라!”설교합니다. 출애굽1세대는 광야40년동안 전쟁과 역병으로 모두 죽었고, 2세대는 광야시대 전쟁 역병 중에도 하나님없이 살수없다는 것을 배우고 훈련한 세대였지만, 3세대는 그런 체험이 전혀 없었기에, 대화가 단절된 상황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눈동자같이 지키셨고, 광야훈련으로, 약속의땅 가나안을 주실 것이라 설교하며, 3세대는 질문하고 2세대는 대답하라 권면하는 것입니다. 막6장 오병이어에 이어, 막8장 칠병이어 기적입니다. 주님은 무리들의 배고픔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떡이 몇 개나 있으냐? 질문하고, 제자들은 일곱입니다. 대답하자, 축사하시고 무리에게 나눠 주니 사천명 먹고 일곱 광주리 남았다 했습니다. 주님은 직접 먹을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제자에게 질문하시고 대답하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도 긍휼의 대상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었습니다. 그후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유대를 넘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행14:8ff도 바울과 바나바가 발을쓰지못하는사람을 일으켜세운일로, 루스드라(오늘날 터키)사람들이‘바울과 바나바’를 그리스신화의‘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추앙하려 할 때, 바울과 바나바가 성령에 충만하여“루스드라 시민들이여,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만물을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질문하고 대답하게 하심으로 결국에는, 18절에 그들이 제사하지 않게 되었다 했습니다. 터키 루스드라 사람들, 이방인들이 주님을 알고 영접하게 된 것은, 역시 질문과 대답을 통한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시간 우리도 다시 질문과 대답을 해야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신명기는 이방인문화를 진멸하고 선민 이스라엘에 은혜베푸시는 하나님율법인데 반해, 마가복음은 그 은혜가 이방인에게로 확장되는 주님의 긍휼하심입니다. 더구나, 사도행전은 이스라엘 율법은 사라지고, 이방인 선교를 향한 성령충만입니다. 신명기는 율법은 있지만, 이방인 선교가 없고, 마가복음은 주님의 긍휼은 있지만, 율법의 기준이 없고, 사도행전은 성령충만이 있지만, 율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씩 질문하며 대답할 때, 하나님 섭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신명기의 진멸 대상은 이방인의 가증스런 제사 문화였지, 이방인 자체는 아니였으며, 마가복음은 주님의 긍휼은 말씀을 지키지 못한 영혼을 십자가 보혈로 구원하시는 것이며 사도행전의 성령충만함은 자신을 부인함으로써만 자기 자신이 하나님 소유된 백성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지키되, 주님 긍휼하심을 잊지 말아야 하며, 성령충만해야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철저히 말씀준수로, 타인에게는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세상향해서는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이것을 입체적으로 한순간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면, 누구든지 율법주의나, 자유주의나 개인주의에 편향될 수 밖에 없으나, 하나님은 질문과 대답을 통해, 하나님 당신의 계획과 사랑을 알게 하셨고, 인도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질문하시고 인도하신 것처럼, 가족 성도 동역자 간에도 피차 대화와 숙론을 통해, 다양하고 풍성한 하나님 섭리와 계획을 온전히 바라보며, 쓰임 받는 성도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스스로를 낮출 때 친구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어떻게 질문하고 대답하며 하나될 수 있느냐?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대화하실 필요 없으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부르시고 친히 대화하셨습니다. 우리는 대화할만한 자격도 없지만, 주님은 친히 인도하시며 역사를 이끄신 것은 하나님 당신께서 스스로 낮추시어 우리를 친구 삼아 주신 전적인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기초로 탈무드교육에 적용된 것이, 친구로서 질문 공감 양육하는“하브루타”입니다. 하브루타는 히브리어 헤베르,“친구”에서 온 말로 친구로서 질문 대답 기억 메타 지식을 통한 교육입니다. 쉐마는 들으라!“선언”이라면 하브루타는 자신을 낮추어“공감”하는 것입니다. 소통 대화의 길입니다. 오늘날 통신 매체는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현재 최고지만, 불행히도 소통과 공감은 정비례 하지 않습니다. 질문을 할수록 대화는 커녕, 간극만 벌어지고 넘사벽이 되는게 일반입니다. 왜 간극이 벌어질까요? 관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왜 관심이 다를까요? 상대방 생각보다 내 생각에 집착하여 강요하기 때문이요, 생각이 같아도 패권 경쟁 의식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며, 누군가를 배려하여 천사의 말과 방언을 한다 해도, 잠재된 우월의식과 피해의식 때문에 소통하기 쉽지 않은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높든 낮든 동등하든, 무엇이든지“진실로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하브루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을 내려 놓고 우리를 친구 삼아 부르셨고, 주님도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우리에게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가끔 나 스스로를 낮추면, 남들이 얕볼까봐 염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런 염려와 근심은 절대로, 성령충만 주님긍휼 하나님사랑이 존재할 수 없으며, 크리스챤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낮추고 비울수록, 주님의 영역은 확장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행3:6이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의 기적이 있다면, 오늘 말씀 행14:15은 이방인 지역,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바울과 바나바의 기적입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이 그들을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추앙할 때,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추앙을 향유할 수도 있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향해 단호히“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께 복음 전하는 것은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라!”말합니다. 루스드라 시민들은 추앙했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신격화된 자신들을 즉시 낮추며, 하나님께 돌아오라 복음을 제시할 때, 그들이 제사를 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복음은 자기를 낮추고 주님을 증거함으로 복음이 되는 것이며, 하브루타는 복음을 복음되게 하는 교육방법입니다. 사도 야고보도, 약5:17-18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증거합니다. 구약의 엘리야는“불내리는 선지자”로 알려졌지만, 사도 야고보는 엘리야가 불을 내릴수있는 신비한 능력은 자신을 낮추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능력이라 증거한 것입니다. 시70:5 위대한 왕 다윗도,“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십니다”라고 자신을 낮추며 기도할 때,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임을 고백하며 기도하시고, 성취하고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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