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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5 주일예배 | 주의 영광 내게 보이소서!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 출33:18-23 눅10:21-24 롬11:33-36 시24:1-10 | 이재경목사 | 2020-1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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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광 내게 보이소서!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출33:18-23 눅10:21-24 롬11:33-36 시24:1-10 (출 33:18-23, 개정)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눅 10:21-24, 개정)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롬 11:33-36, 개정)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시 24:1-10, 개정) [1] [다윗의 시]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오늘은 10월 넷째주일, 창조절 여덟째주일, 종교개혁 503주년 주일입니다. 코로나19상황이 호전되었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하고, 완전 종식 위해 좀더 집중 방역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재창궐하기 때문입니다. 방역단계을 높히면 경제문제가 생기고, 단계를 낮추면 방역 문제가 생기는 악순환이 장기화됨에 따라, 사람은 심신이 점점 지칠수밖에 없습니다. 반복적 악순환에 하나님 특별 은총이 소망합니다. 그러나 이런 반복적 악순환이 전혀 의미 없는 걸까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의미 있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도 낡은 것들은 점점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역사는 반복되는데, 처음 한번은 비극이지만, 그다음은 비극 아니라, 희극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일부 크리스챤의 탐욕스런 민낯이 드러나면서 건강한 크리스챤 믿음이 다시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503년전 종교개혁이 300년이라는 적지않은시간에 이루어집니다만, 오늘날 교회개혁 신앙개혁은 코로나19상황이라는 길지않은시간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40년기간에 노예근성과 불신앙;을 도말하시고, 가나안 약속 믿음으로 무장시키시듯, 현재 진행중인 반복적 악순환에서 세속주의 맘몬주의 우상과 낡은 것은 사라지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본질적 신앙에 눈을 뜨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출33장은 모세가 반복적 악순환에 지쳐 있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하자, 하나님이 모세를 예비하신 반석위에서 죽이지 않고 하나님 당신의 영광만 보여 주시는 말씀이요, 눅12장은 70명 제자들이 귀신항복에 기뻐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발견하는 복된 말씀이요, 롬11장은 사도 바울이 모든 것은 주님에게 나오고 주님으로 말미암고 주님께 돌아감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000성도님이 봉독한 말씀은 사면초가 반복적 악순환중에 낡은것과 불신앙이 무너지는 것을 분명히 보고, 믿음의 본질이 다시 세워지는 것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모세의 기도와 주님의 명령,“주의 영광 내게 보여 주소서!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 주의 영광 내게 보여 주소서! 결단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출33장은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사면초가 상황에 있습니다.주님과 동행하자니 이스라엘 진멸이 염려되고, 주님 동행 없이 가나안에 가자니 불안해서 염려되어, 진퇴양난으로 모세는 심신이 지쳐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에 성공했지만,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우상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합니다.세상적으로는 승리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죄짓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하나님 앞에 죄란 말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에서 승리하는 순간, 동시에 하나님께 죄짓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이 반복되면서 성숙해지기도 하지만, 주님 영광을 보지 못한다면 반복적 악순환이 되기도 합니다.왜 성숙해지지 않고 악순환이 될까요? 하나님 신앙보다 자기 승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눅10장을 보면, 주님은 어려운 상황에 구체적인 선교지침과 함께 제자70명을 파송하지만, 제자들이 주님께 보고할 때에는 승리에 도취되어 주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자신의 공적만 보고 합니다. 제자들로서는 승리의 기쁨이요, 당연한 것입니다만, 주님은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주님은 사단이“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그들의 공적을 인정하며 기뻐하셨지만, 20절에“귀신항복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믿음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 내이름이 기록되었는지 질문하라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이 질문이 없으면, 우리는 인본주의 패권주의로 이기적 집단으로 전락함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해 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하지 못하면, 악순환의 반복 뿐입니다. 제자들도 처음엔 성령충만 귀신항복을 자랑삼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눅10:23절에 주님은 제자들이 깨달은것을 보시고, 너희가 보는것을 보는눈이 복이 있다. 24절에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이것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하였다 교훈하십니다. 그래서 롬11:33ff 사도바울은 로마 교회에“모든 삶의 시작과 진행과 마무리를 주님으로 삼아라!...편지합니다. 유대인 패권, 이방인 패권, 세상 패권을 목적 삼지 말고, 오직 모든 것의 근원을 주님께 두라 증언하는 것입니다. 뒤꿈치잡은자, 찬탈자 뜻인“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음으로 승리하지만, 결국 쫒기는 자가 되고 그런 중에 외삼촌 라반에게도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이것은 야곱의 반복적 악순환 인생입니다. 결국 얍복강에서 환도뼈 골절 고통 속에서“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이스라엘”로 개명된 후에야, 형 에서와의 문제, 세겜성문제 서원기도성취 등등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승리하지 못하면, 하나님앞에 내이름이 기록되지 못하면 반복적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없으며 세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출33장에 모세는 주님 임재 없이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올려 보내지 말라 간청합니다.젖과 꿀이 가나안 입성도 중요하지만, 현재 있는 이 광야가 척박하기는 하지만, 주님 함께 하심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주의영광 내게보여주소서!”기도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기도를 했을까요?출애굽기에는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척박한 땅, 광야에서 애굽의 노예근성, 인본주의, 패권주의와 이기주의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것을 직접 눈으로 봄으로서, 출애굽 기적 이상으로 하나님 백성, 하나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이 더중요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코로나19 중에 반복적 악순환에도, 죄된것들이 사라지는 것들 발견하시는 신령한 눈이 있기를 축복합니다.고난 중에도 점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크리스챤의 모습을 발견하시는 성도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반석 위에 서라”말씀하신 주님 은혜와 긍휼에 순종해야 합니다. 출32-33장은 하나님과 모세와의 긴밀하고 긴박한 대화가 나옵니다. 출32:3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진멸하실까봐 직접 동행하시지 않고 대신 사자를 보내시겠다 말씀하십니다.출33:13 모세는 그 마음을 알고,“내가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으면, 원하건데,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주의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 주옵소서” 간청하자, 14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절에 모세는“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 올려 보내지 마소서!” 그러나 16절 모세는“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은 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19절에 여호와는“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 없음이니라!”21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집중하려 하고,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에 관심하는 드라마틱한 대화입니다.죄와 허물 많은 모세가 주님 영광 대면하면 죽음이지만, 모세가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과 동행하려는 마음은 여호와 하나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신다.하나님은,“하나님 곁에 있는 한 장소, 반석 위에 서라!”하시고,모세를 반석 틈에 두고, 손으로 모세를 덮어 주시어,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등을 보여 주십니다.하나님의 심판이 구원으로 변화되는 순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그렇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곁에 있는 한 장소, 기적의 반석 위에 섭니다.이미 하나님의 사항이지만, 사람들은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그 자리에 섭니다 “주님 영광 내게 보이소서”는 세상을 극복하는 말씀이라면,“주님 곁 반석에 서라”는 하나님 은혜를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주님 영광 중에 반석 위에 선다는 것”은 세상 부귀 영화 관심 말고, 주님을 피하지 말고, 오직“신앙 믿음의 자리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모세에게는 시내산 불붙은 떨기나무요, 우리에겐 예배하고, 기도하는 자리요, 일상에서는 내몸처럼 이웃사랑실천 자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코로나19로 두려움 중에 숨어 있습니까? 자기 세계 안에 갇혀 있습니까? 숨어 있다면 역사도 없습니다.혼란 도피 때문에 위해 주님도 피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을 피한다면 역사는 없습니다. 시24:3-6에 시편기자 다윗은“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했습니다. 다윗은 반복적인 악순환 구조 속에서 허탄한 신화와 거짓 맹세가 몰락하는 것을 봅니다.다윗은 힘겨운 나날 속에서 거룩한 곳에 서기를 원했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얍복강가 야곱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겨루어 이겼듯이, 이스라엘이 브니엘의 아침햇살로 주님 보았듯이모세가 시내산에서 주님 영광을 사모하며 그러했습니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반복적인 악순환에서,“낡은 것은 벗어 버리고”,“주님 바라보는 새로운눈 뜹시다.” 오늘 제목,“주님 반석 위에 섰습니다! 주의 영광 내게 보이소서!” 말씀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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