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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 주일예배 |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사 6:1~8, 요 8:12-20, 계15:1-4, 시40:5-10 | 정보미디어팀 | 2020-10-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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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사 6:1~8, 요 8:12-20, 계15:1-4, 시40:5-10
(사 6:1-8, 개정)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요 8:10-12, 개정)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계 15:1-4, 개정)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시 40:5-10, 개정) [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9]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10]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오늘은 11월 첫째주일, 창조절 아홉째주일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 점점 깊어지는 가을 환절기입니다. 갑작스럽게 겨울이 오는 것 보다, 겨울 추위 적응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환절기 가을을 잘 보내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일교차는 감기를 유발시키지만, 동시에 변화무쌍한 날씨 덕분에 상쾌한 공기를 제공받기도 합니다. 어둡게 생각하면 한없이 힘겨운 시간이지만, 생명의 빛으로 보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긍정적으로 대처하느냐? 문제입니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현재를 살고 있지만, 현재를 뛰어 넘는 것이며, 미래를 경험한 적 없지만, 미리 그 때를 대망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와 환절기, 결코 쉽지는 않지만, 버릴 것 없다는 전제 하에 하나님신앙으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믿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차이”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6장은 남유다왕 웃시야 사후, 힘겨운 시기에 이사야가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 계획과 자기 소명을 깨닫는 말씀이요, 요8장은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끌려온 여인을 이용하여, 주님을 시험할 때,“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를 구분하시는 주님의 말씀”이요, 계15장은“생명의 빛으로 짐승과 그 우상을 패배시킨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리라”는 말씀입니다.
000어린이가 봉독한 말씀은“하나님 만나고,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구원받는다!”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제목은 주님 말씀,“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입니다. 첫째, 어둠에 다니지 않아야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8:12) 요8:12에 주님은“생명의 빛을 얻으려면 어둠에 다니지 말라!”하십니다. 어둠 흑암 권세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왜 굳이 어둠에 다니지 말라 하셨을가요? 당연히 주님은 어둠 흑암 권세를 이길 수 있지만, 인간은 어둠 권세를 이길수도 없고, 유혹도 미혹 앞에 넘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둠을 이길 수는 없지만, 주님은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어둠에 다니지 않는 결단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왜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어둠에 다니지 말라 하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이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으로는 정결하고 사람에게 존경받는 지도자들인데, 어떤 어둠 속에 있었단 말인가요? 요8:1-11이 그 배경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앞세워, 용서하면 율법을 어기고, 율법대로 치리하면 사랑 계명을 어기게 하여 주님을 공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시자“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나가고 주님과 여자만 남았다”했습니다. 주님은 여인에게“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주님이 이르시되,“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십니다. 주님은 여인을 정죄하시지 않고 용서하며 생명을 살리려 하십니다. 그러나“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에 한마디 말도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고, 여인을 용서하시고 생명을 살리시는 주님께 그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하던 바리새인들은 여인의 생명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주님을 공격하는 일에만 열중합니다. 요8:13절 이하는 바리새인들의 어두운 민낯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3절에“바리새인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해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데, 쉽지 않지만,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그때까지 말도 못하던 바리새인들이 갑자기 감정을 앞세우며“너 잘났다. 그러나 네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다!”인신공격 하는 것입니다. 인신공격은 막말 수준입니다. 막말이 무엇입니까? 영혼 없는 말이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마11:18ff에는 요한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니 귀신들렸다 하더니, 주님께서 먹고 마시니,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막말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경건한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어둠”헬라어는 스코티아σκοτία입니다. 그 뜻은“숨김”“기만”“지식결핍”입니다. 자신을 숨기고 사람을 속이는 것이며 그 이유는 주님에 대한 지식 결핍입니다. 주님은 우리 중심을 꿰뚫어 보고 계시는데, 주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자신을 숨기고, 타인을 속이며,“어둠”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유례 없이 부흥했습니다만, 외형적으로만 성장하다 보니 어두운 민낯이 노출되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을 잃어 버렸고, 무성한 잎은 있으나, 열매 없어 말라버는 무화과가 되었습니다. 지난 목요일(29일)새벽 마7장 주님 산상수훈 마지막 부분 주제“선한열매 없다면 어둠속에 있는것”이라 했습니다. 마7:1-11에 주님은“구하라 얻을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했지만, 어둠 속에 다니는 한, 구해도 얻지 못하고, 찾아도 보지 못하며,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약4:3에 야고보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크리스챤은 번성 번창하려면, 어둠 속에 벗어 나야 합니다. 어둠 속에 벗어나야, 만사형통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어둠을 제거합시다! 그런 은총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생명의 빛을 얻어야 어둠에 다니지 않습니다. (요8:12) 같은 말씀입니다만, 주님 은혜로 생명의 빛을 얻은 크리스챤은, 세속의 단맛이 아무리 달콤하다 할지라도 어둠이 얼마나 역겨운 것인지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어둠이 얼마나 역겨운지 느끼는 사람은 주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둠이 역겹습니까? 생명의 빛이 달콤합니까? 사6:1에 남유다왕 웃시야 죽던해, 심신이 지쳐 있었지만, 이사야는 주님 보좌를 발견하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5절“화로나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부정한 사람으로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도다!”고백합니다. 이사야는 주님의 보좌 앞에 자기 자신의 어둠을 발견하고 어둠의 역겨움을 표현합니다. 주님 은혜를 체험하면 나 자신 어두운 민낯에 역겨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6절에 스랍(불뱀) 중 하나가 제단의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댄 후,“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합니다. 이사야의 주님의 사죄 은총 체험 순간입니다. 이어서 8-13에 세상은 백성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런 중 이사야가“어느 때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질문하자, 주님은“황폐 상황에 이를 것이나, 너는 그루터기 거룩한씨 되어 말씀 전하라”하십니다.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기 전후,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힘겹고 어두운 상황 속에 세속적 단맛에 유혹하고 미혹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만, 이사야는 이미 생명의 빛을 얻었기에, 어둠은 이미 역겨운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위로 권면 소망 복음을 전합니다. 1593년 프랑스 미술가 [조르주 드라쭈르]는 바로크 미술은“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라 말하며, 최고의 예술 가치는“어둠을 드러냄으로 빛을 강조하는 것”가 아니라,“빛을 드러냄으로 어둠을 제거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어둠을 드러내며 빛을 드러낼 수 없는 없습니다. 빛을 드러냄으로 어둠이 제거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최고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최근 매체를 통해, 젊은 청년들의 토크 중에,“영혼 없는 말”이 있습니다. 젊쟎게 말하면“진실없는말”이지만, 속되게 말하면,“개수작부리지마!”입니다. 저는 이런 표현에 관심하지는 않습니다. 대중 매체 도상기호 연구 대상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모르는 세대, 특히 젊은 청년 문화에서“영혼”의 소리에 대한 갈증으로 들렸습니다. 고도의 문명 속에 주어진 자유로운 세상이지만, 그 자유가 하나님 임재 장소, 영혼을 상실한 것입니다. 오늘날, 어느 누구라도 자유롭게 자기 표현으로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생명의 빛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000어린이가 봉독한 세번째 말씀 계15장은 어둠의 세력, 용과 첫째짐승과 어린양같은짐승을 숭배하는 자에 대한 일곱 대접 재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빛과 어둠이 구분됩니다만, 그 다음에는 빛보다 어둠이 더 좋아 보이다가, 마지막에는 어린양같은짐승 즉 적그리스도, 빛과 어둠이 구분이 안되는 시기에 하나님의 일곱 대접 심판이요, 생명의 빛으로 세짐승을 패퇴시킨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생명의 빛이 아니면, 살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빛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빛은 오직 인내와 성실, 사랑과 용서 그리고 예배와 기도입니다. 그 생명의 빛은 눈물로 씨 뿌리며 기도할 때, 성취되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승리해야 삶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예배와 기도로,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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