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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 주일예배 | 이재경목사 |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 사40:21~26 막12:13-17 엡1:15-23 예배양육팀 20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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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40:21~26 | 12:13-17 | 1:15-23 | 40:12-26

(40:21-26)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12:13-17)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1:15-23)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40:12-26)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13]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4] 내 생명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는 다 수치와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는 다 물러가 욕을 당하게 하소서 [15] 나를 향하여 하하 하하 하며 조소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놀라게 하소서 [16]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오늘은 11월 첫째주일, 창조절 열째주일입니다. 다음 주일이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코로나19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하며,“하나님은 무엇을 창조하셨고,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건강과 경제, 감사는 커녕, 상처가 적지 않은데, 과연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 조응적 차원의 감사, 즉 정신적 영적 성숙함을 감사하라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땅의 소출 봉헌만 감사가 아니요, 주님께 받았기에 드려야 한다는 것도일종의 주고받는 거래같아 온전한 감사에는 역부족입니다. 4장에 가인의 제사보다 아벨을 받으신 것은, 예물 보다 아벨이라는 사람을 받으신 것입니다.진정한 감사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원초적 이고 총체적인응답이요, 그것을 진실하게 감사할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 상황을 하나님께 질문하며 답을 얻었던 하박국은 합3:18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감사하며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했습니다.

 

오늘 말씀, 40:12은 예루살렘 성전이 잿더미 되고 포로로 끌려온 유다 백성에게 바벨론 마르둑을 바라보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라는 말씀이요, 12장은 가이사냐 하나님이냐 양자택일이 아니라, 패권쟁론 말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며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이요, 8장은 교회는 주님의 몸이며,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니, 주님 인도 따라지체로서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000 봉독 말씀은 이사야 설교제목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입니다.

 

첫째, 땅에서 눈을 들어 주님 바라 보며 감사합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 중 하나는

주님을 믿지 않으면서, 자신 불행 탓에 주님을 끌어 들이는 것입니다. 명백한 불신앙입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땅만 바라 보기 때문이요,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땅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다 백성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백성으로서 자부심은 대단했지만, 땅만 바라 보았기에 왕국이 무너지고 성전이 훼파되고, 자신들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을 보며, 오늘날 우리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코로나19시국, 코로나는 주님도 못막는다? 주님 어디 계시냐? 무엇을 감사할수있느냐?로 시작하여, 교회와 크리스챤이 담당하지 못한 상황에, 가장 불행한 것은 우리 불행에 주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불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눈을 들어 주님을 보지 않고, 땅만 바라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 영광을 가리는 일이 훨씬 더 많은데, 우리는 우리 문제를 주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40:12에 이사야가땅만 바라보고 있는 포로2세대에게위로와 새출발말씀을 전합니다.

13-14, 유다 백성들이여,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 능력과 솜씨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세상 권력도 하나님 앞에 티끌 먼지에 불과합니다.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패망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약해서가 아니라, 바벨론 째칙으로 유다를 깨우치기 위함입니다.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심판하셔야 하는데, 책망하지 않고 용서하시고, 오히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위로 권면하시는 주님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6:25에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해 BC600년경 고대근동을 지배했던 바벨론제국 느브갓네살과 메대왕 다리오에게 참 신은 마르둑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셨고, 바사왕 고레스 왕과 아닥사스다 왕을 강권하사, 2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이루셨고, 8:34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이디오피아 내시 장관 질문에 빌립이 입을 열어 예수라 증거하니, 그가 빌립에게 세례받았던 사건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인간이 연약한 것이지 하나님이 약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크리스챤과 공동체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2:4에서 하박국은 사람은 교만하여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믿음으로 살리라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사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둘째,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 보며 감사드립시다.

 

가장 불행한 것이 주님 믿지 않으면서 모든 불행을 주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만, 가장 당혹스런 것은 주님을 알만큼 안다며 자기 믿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불행은 유혹에 빠진 불신앙이지만, 가장 당혹한 것은 미혹에 현혹되어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유다인들은 처음에는 불신앙에 빠집니다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단에 빠집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을 부정하지만, 이단은 하나님을 다른 세상 권력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고대 바벨론수호신 태양의 아들 마르둑을 더 추앙합니다. 금송아지 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아니, 태양의 아들 마르둑이 여호와 하나님을 이겼다 생각했고, 마르둑과 여호와 하나님을 혼합하는 시도가 생겨납니다. 137:1에 시편기자는우리가 바벨론 강변 곳곳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했습니다.

 

12:17에 왜 바리새인들은 주님에게 가이사와 하나님 중에 선택하라 했을까요? 단순히 동전 문제가 아니라, 로마 황제 가이사의 신격화요, 이단 논쟁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유대인 성전 세금를 부정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은 로마 세금법 위반하는 것이기에, 주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라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일반적으로 두가지 의무를 다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만, 심층적으로 들어가 보면,“자기 자신부터 성찰하라!”는 말씀이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반로마 성향이기에 세금을 꺼렸고, 예루살렘 성전 특권을 사두개인에게 빼앗겼기에 성전세도 아까워했습니다. 쉽게 말해, 권력분쟁으로 인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세금논쟁인데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이 돈돈돈 하며 쟁론하던 것을 주님께 시험함으로써 정치적 희생양을 삼고자 한 것입니다.

 

본인은 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는 강요하는 내로남불 상황에, 주님은 네편 내편 말고, “모두에게 진실되게 자신부터 성찰하라!”는 말씀입니다. 말이 쉬울 뿐이지, 이미 정치적 프레임으로 분리되어 있고, 이권이 개입되어 있는데, 어떻게 자기성찰과 진실된 납세가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결코 쉽지 않습니다만, 주님은 편갈라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편갈라 싸우는 것은 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혜와 마음을 배우려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영지주의는 육체를 버리고 영적 세계를 지향하기에 그럴 듯 하게 보입니다만,

사실은 영과 육을 분리하는 헬라철학 이원론이요, 로마제국의 식민지 지배 이데올로기에 불과입니다.

육체는 최종적으로 버려야 하지만, 버리기 전에 변화시켜야 구원시켜야 하는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구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육체적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1:20-21절에 성령께서 열어 주실 영적 세계는

세상에서 죽은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살려서 하늘의 영광에 앉게 하며

하나님 권세가 이세상뿐 아니라, 앞으로 모든 세대에까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22절에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교회를 주님의 몸으로 삼으셨고,

23절 주님은 만물 위에서 교회의 머리가 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꿈과 비전은 세상과 관계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됩니다. 내 인생의 규모, 지경도 창조주 구원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넓이와 높이에 따라 결정됩니다. 주님을 아는 만큼 큰 사람으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2020년 추수감사,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어디에서 감사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답을 얻읍시다!

바벨론 포로기, 로마제국 강점기, 이단 영지주의 불신앙과 이단의 그릇된 믿음에 현혹되지 않고 주님 바라보았듯이, 코로나19시국 경제불안정 국내외정세 중에 흔들리지 말고, 일주일간 예배위원은 벧엘성전에서 교우들은 각 처소에서너희는 눈을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나 보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며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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