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727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 미4:1-4 계19:1-10 마25:31-46 시24편 | 이재경목사 | 2025-07-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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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미4:1-4 계19:1-10 마25:31-46 시24편 성령강림 후 일곱째 주일입니다. 오늘 마25:31-46은 예수님(인자)이 천사와 함께 보좌에 앉아 모든 민족을 심판하실 일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심판 기준은 놀랍게도 우리의 믿음업적 신앙지식이 아니라,“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것이 곧 나에게 한것”즉“이웃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은 불편한 진실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주님 사랑 말하고 살고 있지만“주님”대하듯“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분류하고자 합니다. 첫째,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편견 때문입니다. 인간 본능은 자신에게 도움되는“영향력있는사람”에겐 호감을 가지지만, 아무것도“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겐 먼저 손내밀지 못하고 오히려 본인 자신의 희생 손실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도움을 주어야할 존재”로 인식되는 순간, 불편하게 생각하거나,“왜 저들은 저렇게 되었을까?”비하 하는 마음은 그들을 외면하는 것을 합리화 하기도 합니다. 둘째,“영적무지”때문입니다. 영적 무지는“지극히 작은 자”에게서 주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요1:14 주님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고, 그 안에서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를 보여 주셨는데, 낮고 천한 육신 가운데 임하신 주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마25:44“왼편 사람들”은“지극히작은자”에게서 주님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이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투옥된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않은 적 있습니까?”항변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향한 너희 마음은 잘 안다-설교자 해석) 45절“이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너희는 영벌에 들어가리라!”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을“지극히 작은 자들”과 동일시 하십니다.“주님”과“지극히 작은 자”가 동일시 되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말씀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마25:37ff 오른편 사람들이“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을 공양한적 있습니까?”묻자, 40절 주님은 분명 단호하게“진실로 이르노니 지극히 여기 형제 중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것이 곧 내게 한것이니라!”분명히 동일시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봅시다! 저는 단순히 이기심 편견 버리라!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영적 무지에서 벗어 나야 합니다. 영적 무지 극복 방법은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주님 얼굴”이 보이면 그는“영적 무지”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 얼굴”보이는 순간, 우리는 주님의 눈을 가지면, 한잔의 물, 한조각의 빵, 따뜻한말, 진실한 위로가 나옵니다. 이것이 삶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창33:10 야곱은 에서를 만날 때 내가 형님 얼굴을 뵈온 즉, 하나님 얼굴을 뵈옵는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라 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시25:6 이것이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고백하고 선포합니다. 주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 안에 주님이 보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바꿔야 할 것이 적지 않습니다!“세계4대 미인대회”는“미스월드”“미스유니버스”“미스인터네셔널”“미스어스”랍니다. 2022년 미스어스에서 사회자가 우승후보자에게 미리 질문을 듣지 못하도록 헤드셋을 쓰게 하고 각각“세상에서 바꾸고 싶은게 있다면 무엇입니까?”묻자“기후위기”“인권”“교육필요성”등 이야기하는데 한국후보 최미나수 씨는 다르게 말합니다.“공감을 나누는 일”입니다. 공감은 친절함이 아니라, 피차 입장 존중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다른 기후문제 인권문제 교육문제 등등도 풀 수 있습니다!”그녀는 이 명언으로 우승합니다.“바꿔야할문제”가 아니라,“바꿔야할본질”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본질이 무엇입니까?“안되고있는 문제”보다,“해결해야할 본질”이 중요합니다. 그 본질은 오직 주님의 눈을 가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지극히작은자”는 단순히“가난한자”“병든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그들 안에 계시다고 선언하신 존재들입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요, 바로 옆에 있는 동역자요 가족이요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섬기는 것은 곧 주님을 예배하는 행위입니다. 주님 시선으로 세상 바라 봅시다! 파송찬양“주기도송”함께 부르시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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