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04 치유의 영성 | 이재경 | 2016-01-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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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훈련04 : 치유의 영성 (마 8:14-17, 개정)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시 41:1-4, 개정)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 많은 병자를 고쳐 주셨고, 죄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사단이 항복한 것을 기뻐하지 말고,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눅10:20) 하셨습니다. 당시에 의사도 있었지만,(막5:26, 눅8:43) 일반이 의술의 혜택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고, 상당히 예외적이었습니다. 대부분 배고팠고, 질병과 정치적 폭압에 시달렸습니다. 말하자면 주님께서는 ‘치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둘러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막8:21을 보면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노라.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소 온 사람도 있느리라” ....주님께 온 무리들의 처지를 말해 주는 말씀입니다. 왜 주님은 무리들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치유의 손길을 펼치셔서 고쳐 주셨을까요? 오늘은 치유의 영성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크리스챤은 주님의 치유의 영성, 즉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쉽게 기적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치유사건은 어떤 특별한 일이거나 기적같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늘 하셨던 일이셨습니다. 어쩌다가 불가사의 하게 생긴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병자 치유 이야기를 빼놓으면 주님의 활동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 말씀도 주님께서 시몬의 장모는 물론 “병든 자들을 다”(마8:16)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왜 병자들을 고쳐 주셨을까요? 흔히 말하기를 주님의 치유사건은 주님 스스로 메시야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기적을 행한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주님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 병자를 이용한 것처럼 이해될 수 있기에 문제가 있는 표현입니다. 좀 더 깊이 있고, 사실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경을 보면, 주님이 병자를 고치신 것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연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만 최소 다섯 번 이상 나옵니다.(마9:36, 14:14, 15:32, 18:33, 20:34 등등) 주님의 치유의 영성은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긍휼하심입니다. 상처입은 영혼속으로 찾아 오시어(Empathy, Sympathy) 그 마음을 치유하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교회와 성도는 상처입은 영혼을 찾아오시는 주님을 온몸으로 받드는 일과 상처입은 영혼을 따뜻한 사랑으로 찾아가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마음과 생각과 아픔을 공감하며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둘째. 치유의 영성은 옳고 그름을 뛰어 넘어 모든 사람이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가운데 눈여겨 볼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병자”를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마8:16) 주님은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 내셨고,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말씀은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 것은 주님께서 모든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병자들을 구별하거나 선별했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은 병의 원인을 개인으로 탓으로만 보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만일 주님이 병자들을 개개인의 잘잘못을 따졌다면, 분명히 선발해서 병자를 고쳐 주셨을 것입니다. 개인의 부주의나 나쁜 습관으로 생긴 병도 얼마든지 있고, 그럴 때, 얼마든지 그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설사 그로 인해 조롱받거나, 피해를 입는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병자를 고쳐 주시되, 차별하지 않고 고쳐주시는 주님, 예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양하며 노래 합니다. 시41:3에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율법으로 생사를 논의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은 주님만이 하셨던 일입니다. 우리는 치유의 영성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치유의 손길을 통해, 율법이 완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치유의 영성은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품성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을 가는 길이요,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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