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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05 평화의 영성 이재경 201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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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훈련05 : 평화의 영성

 

(8:23-27, 개정)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35:27, 개정)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풍랑을 만난 이유는 주님께서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한창 병자들을 고치고 주변의 찬사의 받고 있던 터였는데, 그곳을 떠나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한 사람이 바로 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8:18)

배를 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부터 많은 무리가 따랐고(1) 나병환자를 고쳐주셨고(2-4)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 주셨고(5-13) 베드로의 장모를 비롯 모든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14-16)

아마도 제자들은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몰려드는 사람들앞에서 스승의 놀라운 능력을 좀 더 과시하기에 더없는 기회가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알리는 그런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유혹이나 현실에 처할 때, 주님은 훌훌 털고 일어나 풍랑이 기다리는 바다로 가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주님의 위대한 모습을 봅니다. 주님은 평화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찾아가셨습니다.

이른바, 주님께서 가지시고 보여주신 평화의 영성입니다.

 

첫째. 우리는 죽음의 세력을 꾸짖으시는 하나님의 역사, “평화의 영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다 한가운데 배에서 발생한 풍랑 사태는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큰 풍랑이 일고, 배는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다는 제자들의 외침은 과장이 아닙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무릎을 치며 역시 우리가 믿고도 남음이 있는 우리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할만한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장 난파될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 상황을 단순히 피곤해서 생긴 생리현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너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마태복음이 그리고 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든 완전한 평화를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주님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빼놓을 수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 줍니다.

하나님은 그를 섬기는 사람에게 기꺼이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35:27)

뿐만 아니라, 주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십니다. 그러자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이 대목은 지성이나 과학으로 입증할 일이 아닙니다. 입증할 수 도 없습니다. 초월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여기서 주님이 누구신지를 , 그 분과 함께[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살펴볼 따름입니다.

시편기자도 고난가운데 부르짖으면(107:28-29) 폭풍이 잠잠해지고, 물결도 잠잠히 하시는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주님이야말로, 혼돈과 무질서를 잠재우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죽게 되었다는 구절에 나타나 있는 죽음의 세력을 꾸짖어서 아주 잔잔한 평화를 구축하시는 하나님의 역사(History)를 두 어깨에 걸머지신 주님이셨습니다. 죽음의 세력을 잠재우신 주님의 평화는 주님만이 가지고 계신 평화의 평화의 영성입니다.

 

둘째. 평화의 영성은 깨어서 기도하라는 주님의 품성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교나 헬라-로마에서 는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이 상징에 빗대어 보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주님께서 주무시고 계실 때에는 교회의 생명이 위협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깨어서 활동하시면 교회는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찾아야 하고, 깨워야 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님의 정신이 살아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고, 그렇지 못한 교회는 인간의 조직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개인을 비롯하여 한 가정도 한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정신이 살아 있는 교회와 가정, 그리고 국가...... 기도할 일이 많습니다.

깨어서 기도할 때, 주님의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샬롬의 영성은 깨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 평화는 근본적으로 해결점을 주시는 품성이십니다.

 

평화팍스 로마나에서 유래했습니다. 로마제국이 있는 한, 세계는 평화롭다는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러나 로마에 정복당한 민족과 국가에게도 과연 평화였을까요? 그것은 오히려 폭정이었고, “죄악이었습니다.

도서 [로마제국의 황제들]이라는 책을 보면, 2차 삼두정치로부터,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갈리쿨라 네로 황제같은 인물, 팍스로마나를 실현한 오현제 등등은 로마의 포용성과 합리성 다양성존중이라는 특유의 특성을 잃어버리면서 쇠퇴의 길을 걷습니다.

왜 그러했을까요? 샬롬의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샬롬의 영성은 하나님과의 평화, 이웃과의 관계에서 평화입니다.

문제있는 곳에 근본적으로 해결점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회복을 꾀했으며, 이웃과의 관계에서 회복을 원하십니다.

그 일을 이루신 분이,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팍스와 샬롬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팍스는 권력으로 조용하게 만들려다 쇠퇴의 길을 걸은 로마제국, 권력의 상징을 말한다면,

샬롬은 복잡한 곳에 하나님과 관계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회복되고 치유되는 것입니다.

평화의 영성, 샬롬은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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