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07 소유의 영성 | 이재경 | 2016-02-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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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훈련07 : 소유의 영성 (막 8:1-10, 개정)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왕하 4:42-44, 개정)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고후 8:1-7, 개정)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6]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빵은 분명 일곱 개밖에 없었습니다.그러나 주린 사람은 사천명이 넘었습니다. 빵일곱과 사천명, 간극이 너무 큽니다. 이것으로는 굶주림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흘이나 굶주린 사람들은 모두 만족스럽게 먹었습니다. 더구나 먹고 남은 부스러기로도 열두 광주리를 풍성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조화입니까? 광야이기 때문에 구할 수 도 없었고, 돈도 없었는데 어찌된 일입니까? 주님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신 걸까요? 알리바바? 우렁각시? 가 다녀갔나요? 아닙니다. 주님은 어떤 매직을 부리신게 아닙니다. 천사들의 도움을 받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말씀을 주목해 봅시다. 주님은 그 빵 일곱 개를 드셨고(받았고) 감사드렸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밖에 다른 어떤 기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받으셨고 감사했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무엇을요? 빵입니다. 주님은 빵을 소유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빵을 받으셨고(점유) 축사하셨고(감사) 나누어(공유) 주셨습니다. 이것이 소유에 대한 “주님의 품성” 영성입니다. 첫째. 먼저 주님께서 빵을 점유하셨고, 감사하셨고 공유하셨습니다! 빵은 무엇입니까? 받은 것입니다. 받았다는 말은 그것은 본래 내 소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빵은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빵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은총으로 삽니다. 우리가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고 갈 것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탐욕의 전리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산다면, 어찌 만족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 손에 받은 것이 하나님은총이라면 어찌 감사하지 않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감사드렸습니다. 축사하셨습니다. 은총이 감사의 샘을 터뜨렸습니다. 감사(유카리스트), 그렇습니다. 여기에 참 예배가 있습니다. 은총에서 터지는 기쁨의 샘, 그것은 멈추지 않습니다. 차고 넘쳐서 나누어집니다. 주님은 그 떡을 떼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은총을 기쁨으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감사가 나눔으로 예배가 생활로 믿음이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님께서 나누신 것이 어찌 떡 뿐이겠습니까? 그것은 은총이요, 기쁨이었습니다. 은총은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채우고도 넘쳐서 부스러기로 열 두 광주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은총이 감사를 낳고, 감사가 나눔을 낳고, 나눔은 샘이 되어 차고 넘쳤습니다. 둘째. 소유욕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품성이 자리 잡습니다.! 우리 손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소유, 감사, 어느 것입니까? 어느 것인지, 명확히는 알 수 없겠지요, 다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아서, 기쁜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함께 나누고’ 살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다만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고 찬미하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령 교수가 주님을 영접한 것은 순전히 '민아'라는 자신의 딸 때문이랍니다. 그 딸은 미국에서 검사를 하던 재원이었는데 암에 걸렸고 이를 신앙으로 이겨냈습니다. “죽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그때부터 그의 곁에는 늘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 간절하게 살고 싶은 그 소망을 통해 인간은 주님을 만납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세상의 모든 창조와 역사는 사랑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하나님을 믿기 전에 몰랐습니다. 무릎을 깨뜨리거나 코피나면 엄마를 부르며 집으로 달려가는 아이처럼 상처를 입어야만 하나님을 부르며 달려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어령교수는 말합니다. “나는 종교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세속에 얽매인 끈에서 벗어나 영혼을 해방시키려는 욕망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소유의 끈, 정의 끈, 육신의 끈 모든 욕망의 끈을 놓아야 한다. … 어차피 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정말 튼튼하고 영원한 끈에 끌려 다니고 싶다.” 이것이 소유에서 은총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요? 이런 말은 크리스챤인이 아니라도 늘 하는 말입니다. “비우자”는 말과 비슷합니다. 가장 비우기 어려운 것이 돈, 가족, 사랑, 지위(직업), 질기디 질긴 끈입니다. 비우고 살기 어려운 이유를 다이애나 황태자비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영국인이면서 프랑스 파리에서 죽었고, 그녀의 자동차는 독일제 벤츠였고, 운전수는 벨기에 사람, 그리고 그녀 옆에 동승한 남자는 이집트인였고, 차 사고의 원인이 된 파파라치들은 이탈리아인이었고, 그들이 타고 있던 오토바이는 일본제 혼다였다. 다이애나비를 수술의사는 미국인, 마취제는 남미산이었다. 사후에 배달된 조화는 네덜란드산, 이 기사들은 한국제 삼성모니터에 뜬 기사를 대만산 로지텍 마우스로 클릭해서 다운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캐나다 사람이 빠졌네'고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저자가 바로 캐나다인이었습니다. 이것을 모두 다 비울 수는 없습니다. 소유할 수 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주어진 삶을 살고 있고, 감사해야만 살 수 있고, 나눠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품성입니다. 즉 소유의 영성, 받을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나눌 줄 아는 것입니다. 왕하4장에 엘리사는 가뭄과 기근중에서 이런 일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고후8장에 바울은 마케도니야 교회가 자기들보다 더 어려운 예루살렘교회(흉년과 기근)를 위해 기도하며 봉헌한 일에 대해 감사하며 고린도교회에 편지합니다. 소유의 영성은 받은 것을 감사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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