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08 섬김의 영성 | 이재경 | 2016-02-24 | |||
|
|||||
생명훈련08 : 섬김의 영성 (마 23:1-12, 개정)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수 24:14-18, 개정)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롬 12:9-11, 개정)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어떤 집사님이 천국에 갔는데 예쁜 시종이 나와서 꽃다발을 안겨주며 맞이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흡족하여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 새로 들어왔는데, 베드로가 직접 꽃다발을 들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율법학자였습니다. 율법학자가 천국에 들어오는 일이 하도 드문 일이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은 여기서도 사람 차별하는가 싶어 은근히 화가 났지만, 참고 잘 지냈습니다. 그렇게 한참 지내고 있는데 이번에는 세기에 한 명 올까 말까 하는 사람이 오니 예수님이 직접 영접하신다 하며 천국이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주님이 직접 영접하실 정도면, 얼마나 대단할까요? 드디어 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자마자 주님이 “진짜 왔구나!” 하시며 뒤로 넘어지셨습니다. 주님이 혼절하실 만큼 천국에 희귀한 사람, 그 게 누구였을까요? 그게 바로 대사제였다지요? 도가 지나친 유머일까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섬기는 사람들의 나라라면, 그게 실제 상황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람은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허명에 매여서 자신을 낮추고 자기를 자리에 서기 쉽지 않습니다. 주님은 시대에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불행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허명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껍데기에 집착하여 알짬을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대사제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대신하여 서는 사람입니다. 그가 입는 예복은 그 자신이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인간임을 나타내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기 수치를 가리는 옷을 자기 영광을 과시하는 옷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자신들의 수치를 영광으로 자랑하고 말았습니다. 겸손의 예를 교만의 허례로 구축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섬김에 대한 하나님의 품성, 섬김의 영성 가져야 합니다. 섬김의 영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허명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랍비라는 이름을 듣지 말라. 너희는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지도자라는 호칭도 듣지 말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허명을 따르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허위에 휘둘리거나, 흔들고 다니지 말라입니다. 랍비는 유대인들에게 명예로운 칭호입니다. 아버지는 로마인들이 선호하는 이름입니다. 지도자는 이 세상이 칭송하는 이름입니다. 세상이 좋아하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들은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이름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모든 이름을 우리의 이름으로 갖지 말라 하십니다. 허명에는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허명은 회칠한 무덤과 같습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추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다만, ‘섬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세겜에서 아모리족속처럼, 자기 이름을 내세워 섬길 자를 택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고 고백합니다.(수24: 14-18) 사도바울은 섬긴다는 것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을 먼저 하는 것이며, 부지런히 열심을 품는 것이라 했습니다.(롬12:9-11) 우릭 되어야 할 사람, 우리가 따라야 할 이름은 “섬기는 이”입니다. 주님이 좋아하신 이름도 ‘섬기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세상에 다만, 섬기는 이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섬기는 이 , 그는 누구인가요? 바로 집사(Diakonos,디아코노스)입니다. 둘째. 섬김의 모델, 주님처럼,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 20:28; 막 10:45).”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본받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눅22:27에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 중에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주님은 이방인들은 섬김을 받고자 하나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눅22:27). 세상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섬기라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누어 주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사람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더 낫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고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분부하십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소외된 노인들, 살 길이 막막한 소년소녀 가장들, 수많은 장애인들, 고민많은 청소년들, 정의를 위해 일하다가 핍박받는 사람들 등, 이외에도 헤아릴 수 없는 섬김의 대상들이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는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를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3-4)고 말하셨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언제나 자기의 이익만을 계산합니다. 그러므로 조그만 것을 베풀고도 이에 대한 대가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섬김을 본받는 사람은 많은 것을 베풀고 섬겼어도 마땅히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매사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자기를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빌 2:6-8). 이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다하여 섬기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