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09 회개의 영성 | 운영자 | 2016-03-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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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훈련09 : 회개의 영성 (계 3:1-6, 개정)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 30:8-18, 개정) 『[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11]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을 의지하니 [13]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 하셨은즉 [14]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 [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16]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마 23:13-28, 개정)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삶에서 드러난 신앙은 진정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네가 살았다는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라는 말씀앞에 마음이 찔리지 않는 사람 몇이나 될까요? 우리는 이름뿐인 교회, 이름뿐인 크리스챤은 아닌가요? 교회 창립 이래, 지금처럼 크리스챤이 존경받지 못하는 시대는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때가 약해서”라 합니다. ‘교회는 잘 하고 있는데 세상이 몰라준다’ 교회가 잘하고 있는 부분도 있는데, 잘못된 부분만 너무 부풀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억울함을 토로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당시 사대교회에 던지는 사도요한의 경고는 ‘종교적 행위’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모든 행위’에 대한 것입니다. 교회란 예언과 방언, 뜨거운 기도같은 종교적 행위 때문에 겉으로는 풍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충만함과 거룩함이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살았다 하는 이름으로 가졌으나, 죽은 자”(계3:1)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네가 어떻게 받았는지 어떻게 들었는지 지켜 회개하라”(계3:3)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삶’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늘 ‘행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믿음이 생활과 떨어져 있지나 않은지 살피고 회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회개를 할 수 있을까요? 이른바 ‘회개의 영성’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저녁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회개는 변화입니다. 회개는 형식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주님도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말씀하십니다.(마23:28) 안과 겉이 모두 깨끗해야 합니다. 겉모양이 전부가 아니라, 먼저 속사람이 회복되어 행동과 삶까지도 변화할 때, 비로소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눈물흘리며 회개하는 기도도, 목이 쉴 때까지 부르짖는 감정적인 회개도 변화된 삶으로 연결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형식적인 회개, 교회안에서만의 회개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계3:3) 라고 요한을 통해 경고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회개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여리고 성에서 아브라함을 찾고자 했던 열명의 의인처럼, 사데교회에서도 흰옷을 더럽히지 않은 적은 수의 의인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깨끗한 옷이 상징하는 것은 정결하고 거룩한 삶입니다. 깨끗하지 못한 세상에서 흰옷을 유지한 몇 명의 의인들,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그 이름이 영원히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참 신앙인으로 사는 것을 버거워하는 우리에게 그들의 삶은 큰 희망과 도전이 됩니다. 진정한 회개의 표본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회개는 아름다운 것을 배우는 지혜입니다. 먼 곳이 아닌,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눈을 돌려 봅시다. 험난한 세상에서 힙겹게 사느라, 지쳐서 우리 가운데 온전히 깨끗한 흰옷을 입은 사람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군데군데 얼룩진 사이로 보이는 깨끗함을 서로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배우고 본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의 얼룩에 대해 걱정하고 깨끗함을 본받기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공동체의 교제를 통해 정결한 생활을 칭찬하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 노력합시다. 어떻게 하면 더 신실한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지혜를 주고 받읍시다. 아마 서로의 얼굴이 이전과 달라 보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꿋꿋하게 깨끗함을 지켜낸 신앙 동료들의 모습이 새삼 아름다워 보일 것입니다. 서로의 삶에서 올바른 부분들을 본받는 공동체의 삶은 우리를 참되고, 신실한 신앙인으로 인도해 줍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진 그대로 ‘살아 있는 자’가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길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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