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눔06 두 소경의 믿음 | 운영자 | 2019-0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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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9:27-31절 개역개정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생명나눔06 : 두 소경의 믿음 생명나눔06 : 두 소경의 믿음 (마 9:27-31, 개정) [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오늘 말씀은 두 소경이 소리 지르며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은 결과 결국 눈을 뜨게 된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보면 주님께서 또 한 번의 기적을 나타냈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소경을 통해 우리 자신의 신앙을 재점검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과연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두 소경을 통해 믿음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 믿음은 포기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온 소경에게서 배워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 ) 오늘날 소경을 시각장애우라 칭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그들의 소원을 이룰 만한 믿음의 모양이 나오는데 그것을 포기 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두 소경은 계속 따라가며 소리 질렀습니다. 누구의 집인지는 모르지만, 주님께서 집에 들어가실 때까지 대꾸도 없으셨지만, 계속 포기 하지 않고 따라가는 두 소경의 믿음이 곧 믿음으로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주님을 따라가는 믿음이요, 주님의 치유 능력을 확실히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호칭은 흔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 아닙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유대인에게는 메시야를 호칭하는 말입니다. 즉 왕이란 말이요, 왕의 후손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메시야의 대망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메시야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 해 줄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둘째. 믿음은 “바라는 것”입니다. 히11:1에 믿음은 “보이는 증거”는 없지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아도 “바라는 것”을 두 소경은 주님을 그냥 따라 다니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형편을 아뢰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상대방을 믿지 못한다면 도움을 청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을 믿을 때,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두 소경은 주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믿고, 의지하고 도움을 청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에 대한 어떠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저 한번 불러보는 식으로 주님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한낱 종교의식으로 주일이니 예배에 참석했다는 양심의 위로를 얻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말씀도 형식으로 듣고, 찬송도 의미 없이 부르고, 기도도 문장적 표현으로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설마 내가 그런 유약한 믿음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 ) 셋째. 믿음은 긍정하는 것입니다. 두 소경은 주님이 능히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느냐는 질문에 “주여 그러 하오이다” 대답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소경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 믿느냐?” 물으실 때,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확실히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때,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 나게 될 것입니다. 사53:5-6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를 우리 죄악을 담당시키시는 분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믿음은 바라의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과 그 분의 말씀을 긍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말씀 두 소경 이야기와 나를 비교하여 도전이 되는 이야기를 함께 기록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렸습니까? 날마다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까? 매일 성경을 읽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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