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눔08_수로보니게 여인 믿음 | 운영자 | 2019-02-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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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5:21-28절 개역개정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성경본문] 마가복음7:24-30절 개역개정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생명나눔08 : 수로보니게 여인 믿음 (마 15:21-28, 개정)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막 7:24-30, 개정)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수로보니게 여인을 마태복음에서는 ‘가나안 여인’이라 했고, 마가복음에서는 ‘헬라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헬라인’으로 칭하는 것은 유대인을 이방인와 구별하는데 사용되었고, ‘수로보니게’ (시리아 족속과 페니키야 족속의 접경지역) 주민이며, 두로 시돈 사이에 해안 지방 출신으로 바알신을 섬기던 가나안 후손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녀 이름은 물론이고 남편이나 딸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귀신이 들려 치유 될 수 없는 딸의 병으로 인해, 그녀는 어머니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격었고, 주님과의 만남으로 통해 치유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통해 얻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주님은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비를 구하는 여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침묵) 주님은 왜 그녀에게 침묵하시며 외면 하셨을까요?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는데, 왜? 그런 것일까요? 그러나 결론적으로 주님은 결코 그녀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여인의 간청을 들어주셨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주님은 언제나 맹인 지체장애인 정신병자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으며 사나운 바다를 잠재우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이 그 여인의 간청을 외면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종종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다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부르짖는 이들의 간구를 언제나 들으시는 주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이 여인의 소원을 예수께서 거절하신 것은 그녀의 신앙을 시험하고자 하신 데서 기인합니다. 우리도 주님 응답이 더뎌질 때, 내 믿음을 시험하시는 주님(마태/마가 공통 입장)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둘째. 여인은 주님의 침묵에도 주님의 치유와 사랑을 확신합니다. 절박한 처지에도 여인은 주님께서 자기 딸을 치유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사도들에게 간청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길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말씀하셨습니다.(거절) 뿐만 아니라, 단지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원했던 여인에게 주님은 “자녀에게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니 하니라” 심한 말씀까지 하십니다. (모욕) 이러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님의 발 아래 엎드려 울면서 계속 간구합니다. 수모를 당하면 당할수록 그녀는 차분하게 대답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에 주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셨고, 그 때로부터 그 땅이 나으니라 했습니다. 마치 ‘네가 나를 이겼다. 너의 딸은 이제 나았다. 집으로 가라. 그러나 네가 집에 이르기 전에 딸이 달려 나와 너를 마중하게 되리라’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치유받고, 잘 살고, 형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도 주님에 대한 확신이 더 중요한 근거입니다. 셋째. 주님은 시공간적 민족적 한계를 초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인의 간청에 주님은 첫째는 침묵, 둘째는 거절, 셋째는 치욕으로 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여인을 통해 진실한 믿음이 고양되는 세가지 단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결코 주님께서 그 여인을 배척하신 것이 아니라, 견고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복과 사랑를 베푸시기 위한 의도에서였습니다. 집에 돌아온 가나안 여인은 제 정신으로 돌아와 웃고 있는 사랑스러운 딸을 보고 얼마 기쁘고 감사했을까요? 주님께서 여인의 딸을 고치시기 위해 직접 가셨나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에게 행하신 주님의 기적은 회당장 야이로의 경우처럼 자기를 필요로 하는 집에 직접 가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으로 치유되었다는 주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귀신 들린 소녀는 완전히 나았습니다. 이것은 시공간과는 상관없이 능력이 미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능력은 모든 시공간을 초월하며 주님의 구원은 모든 민족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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