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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828 절제란 무엇인가? | 이재경목사 | 2024-08-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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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절제(Self Control)란 무엇인가?
(고전 9:24-27, 개정)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프랑스 계명주의 사회학자 장자크 루소는“절제와 노동은 가장 훌륭한 두명의 의사들이다. 왜냐하면 노동은 식욕을 돋구고 절제는 지나친 탐닉을 막기 때문이다” 했답니다. 그 중에 특히 절제는 건강과 힘과 평안의 기초요 중국 격언에서도“최선의 양약”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동서고금 막론하고 사람들은 절제를 강조했고, 실제로 진정한 행복은 절제에서 온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기독교 자체가 금욕주의는 아니지만, 극기와 절제는 신앙 생활에 꼭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고전7:5-9) 갈라디아교회(갈5:23)와 디모데(딤전3:1-11)와 디도(딛1:8;2:2) 에게 편지할때, 절제를 강조했고, 사도 베드로도 지식에 절제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벧후1:6) 왜 바울과 베드로는 신앙생활에 절제를 강조했을까요? 우리가 아무리 신앙적 열정이 있다 하더라도 만약에 절제가 없으면 그는 언젠가 쓰러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절제란 무엇일까요? 첫째 절제는 참고 억제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살던 당시 고린도에는 2년마다 지금의 올림픽 게임 같은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체 그리스(Greece)를 열광케 했는데 특이한 것은 그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적어도 10개월 이상 극기 절제 연습 훈련을 한 다음에 참가했답니다. 바울은 고전9:25ff 이것을 연상하면서 세상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토록 극기 절제하는데 하물며 영적인 싸움 신앙의 승리를 거두고 하나님 앞에서 상을 얻으려면 어찌 절제 극기가 없을 수 있겠느냐 강조합니다. 절제는 모든 본능과 감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 보며 참고 억제하는 것입니다. 절제 못하는 사람은 마치 자동차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브레이크가 고장나면 자신도 타인도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절제 없는 신앙생활은 자신과 다른 이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둘째 절제는 구별하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 열째 계명은“네 이웃의 집이나 네 이웃의 아내나 네 이웃에 있는 것을 무엇이든지 탐내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 과일을 먹지 말라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만을 먹지 말라 엄히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명령을 어기고 따먹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했습니다. 성도들은 먹을 것과 먹지 않을 것, 할 말과 안한 말, 할 일과 안할 일을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이것들을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셋째 절제는 모든 것을 주제와 분수에 맞게 하는 것입니다. 절제는 무조건 본능 욕망을 꺽어 버리는 것이라 하지 않습니다. 절제는 모든 것을 주제와 분수에 맞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제에서 벗어나고 분수를 넘어서면 욕심이요, 야고보 사도는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나이아가라 폭포의 높이는 158피트랍니다. 어느 추운 겨울, 독수리 한 마리가 폭포 위의 저멀리서 떠내려 오는 죽은 양 한마리를 발견하고는 그 양위에 올라 타고 떠내려 오면서 맛있게 뜯어 먹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폭포에 가까이 와서도 계속 뜯어 먹다가 급휴에 휩쓸리자 그 때서야 날아가려고 했지만 그 긴 발톱이 양의 살에 들어가 박힌데다가 얼어 붙기까지 해서 그만 그 폭포에 휩쓸려 떡어져 죽고 말았답니다. 고도화된 문명 속에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세상 쾌락입니다. 한마디로 무절제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믿음의 생활과 절제의 은혜를 받아서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쾌락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하나님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벧후1:5-7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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