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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023 예배찬양훈련40 | 겸손한 신앙생활 | 막1:9-11 | 이재경목사 | 2024-1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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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장 겸손한 신앙생활
(막 1:9-11, 개정)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세례 요한은 자기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요, 주님 앞에서는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확고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막1:9을 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 연출됩니다. 예수님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하는 사람이 어떻게 메시야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다는 말입니까? 왜 예수님은 죄인처럼 되어 요단강으로 들어 가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이 예수님의 세례는 몇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낮은 곳으로 내려 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받으셨나요? 신앙 생활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 가야 한다는 교훈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예수님처럼 내려 가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살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다 했고, 섬기는 자가 섬김 받는다 했습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높아집니다. 죽어야만 부활이 있고, 한알의 밀이 죽어야만 백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고민 갈등 다툼 그리고 상처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화내는 것도 모두 내려 가는 삶이 서투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눅18:14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내려 가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간단해 집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낮은 곳으로 내려 가는 삶입니다. 그 때 비로소 신앙이 주는 신비스러운 힘과 하늘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둘째 예수님이 죄인의 자리로 내려 가셨다는 의미입니다. 세례는 죄인이 죄 씻음을 위해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단강으로 내려가서 세례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죄인의 모습으로 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도전을 줍니까? 예수님이 스스로 죄인의 모습으로 낮아지신 것은 큰 교훈이 있습니다. 마9:10-11 예수님이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바리새인의 조롱과 혐오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요9:31에 치유받은 맹인이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예수님이 친히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모습은 예수님 스스로 낮아지시는 모습입니다. 죄인으로서가 아니라, 경건한 삶을 보여 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겸손한 신앙생활을 하라 하시는 교훈을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로 내려 가셨다는 의미입니다. 세례는 온 몸을 강물에 침수시키는 예식입니다. 내 전신이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이제 나는 완전히 죽었다는 의미요, 다시 물속에서 나오게 되면 이제는 나는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았다는 의미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왜 교회 건물 위에 십자가를 세웁니까? 십자가 아래 있는 사람은 모두 요단강에 있는 사람이라는 표시입니다. 요단강 의미를 아는 사람은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고, 성령강림절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요단강 역사 없이 성령강림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곧 나의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세상에 전파하는 일입니다. 비둘기 같이 임했던 성령의 역사가 우리들을 통하여 상처와 아픔이 있는 곳에 전파되어 건강한 믿음 공동체를 이루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파스칼은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말합니다. 첫째는 의인으로 자처하는 죄인, 즉 자칭 의인이요, 둘째는 죄인으로 자처하는 의인이다. 어거스틴은 신앙생활에는 첫째로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 말합니다. 크리소스톰은 겸손은 모든 덕의 뿌리요 어머니요 기초다 말했습니다. 로버트 레이턴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라 말합니다. 겸손한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아무도 비난할 수 없는 부족함을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겸손의 소극적인 면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요, 적극적인 면은 타인을 존중하는 섬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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