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05 생명훈련2-4 | 치유받기를 원하느냐? | 이재경목사 | 2025-02-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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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치유 받기 원하느냐?
(요 5:1-18, 개정)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치유 받아야 할 것도 많고, 풀어야 할 것 도 많은 때입니다. 치유받기를 원하십니까? 낫기를 원하십니까? 이러한 때 우리들에게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첫째 주님은 이미 그 사람의 병을 알고 계셨습니다. 6절을 보면,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의 병이 아주 오래된 불치병인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관찰 혹은 진단으로 아신 것이 아니라, 주님 당신의 능력으로 아셨습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성공실패 건강아픔 과거현재 오늘 내일 모든 것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할 때 피할 수도, 숨길 수도 없습니다. 올바로 살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두렵고 떨릴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좋습니다. 든든합니다. 걱정안합니다. 감사합니다”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주님은 “낫고 싶으냐?” 물어 보셨습니다. 주님이 네 병을 고치고 네 눈을 뜨게 할 수 있다고 믿느냐? 그 믿음을 물어 보신 것입니다. 만약 그 병자가 “그걸 몰라서 묻습니까? 낫고 싶지 않으면 뭐하러 여기 있겠습니까? 비법이 있으면 고쳐 주시오!” 라고 말했다면 아마도 그는 고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낫고 싶으냐?” 질문 속에 “내가 너를 낫게 해 주셌다.”“네 문제를 풀어 주겠다!”“나를 믿으라!”“는 약속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주님이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면, 알아서 하세요 편하실 때로 하세요 처분 기다릴께요!” 말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믿습니다!”“낫고싶습니다!”“원합니다.”“라야 합니다. 마9:23ff“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셋째 그 병자는 넣어 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동문서답입니다. 병자는 낫고 싶으냐 물으셨는데 물이 동할 때 넣어 줄 사람이 없다 말합니다. 모든 병자가 물이 동할 때를 기다려 왔는데, 무한생존 적자생존.. 누가 누구를 넣어 주겠습니까? 개인주의 집단이기주의 시대에 우리를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습니다. 절망 좌절이기 때문입니다. 집 돈 가족 직장도 있지만, 아무도없다 나홀로다 이런 정신적 고독 상태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잊거나 버리거나 떠나거나 외면치 않습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평안할 것이요 믿지 못하며 불안합니다.(창28:15, 신31:8 수1:5) 넷째 주님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 가라! 하십니다. 우리는 걱정 염려로 가득한 사람 조차도 버리지 않으시고 고쳐 주시는 주님 사랑과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심지어 주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 동문서답,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 조차도 탓하지 않으시고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며 치유하십니다. 9절,“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에 집중합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가 연못 속에 넣어 줘서 일어 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고 나를 살리시고 지키십니다. 여기 저기 기웃 두리번 하지 말고, 한숨 낙심 절망 말고.... 주님 찾고 바라보고 믿고 맡기고, “내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 갑시다.!” 우리 상황은 고쳐야될것 풀어야할것이 많은 산넘어 산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명령에 아멘으로 순종하며 일어섭시다. 고독 외로움 쓸쓸함이 찾아올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 약속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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