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30 수요기도&성경공부 | 믿음과 칭의 | 이재경 | 2021-06-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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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 믿음과 칭의
(롬 5:1-11, 개정)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오늘날은 기독교 신앙이 도전받는 시대입니다. 특히 상대주의에 기초한 종교다원주의는 믿음에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떠나 다른 구원의 길도 있다 말하기 때문이고, 코로나로 교회의 권위가 실추되는 상황은 위기를 가중시켰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칭의는 종교개혁의 중요한 외침이고, 오늘날 우리의 신앙고백의 근간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엡2:8-9에“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은 믿음과 칭의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은혜 하나님은 인간을 부르셨고, 그들을 값없이 의롭다 칭하셨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기에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과 의롭다 칭하시는 하나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칭의 선언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사도바울은 롬3:30에“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이를 믿는 자들에게는 어떤 구별도 없으며,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의되며 그렇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고후5:21에“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담당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덧입혀 주셨습니다. 2.하나님과 화평케 되는 은혜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의 전적 은혜로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골1:20-22에는 영원한 상속권을 주시며 전에 원수되었던 자리에서 하나님과 화평케 되는 복을 주셨다 했고, 그러므로 롬8:1,31에 그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함으로 그들도 믿음으로 화평의 복을 받고 누리는 삶을 어게 하셨습니다. 칭의받는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맺는 말 한 성도가 질문합니다. 목사님,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게 죽으셨다는 것은 믿는데 제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자꾸 혼동히 되요,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의롭지 못하거든요! 이 질문은 우리들도 비슷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상대주의적 사고를 하는 한, 의롭다 인정받는“칭의!”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답변합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 것, 칭의는 우리 행위와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그 믿음으로 보시고 죄가 있으나, 죄가 없다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생각으로는 의롭다 생각할 수 없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서 나같은 죄인을 왜 죄인이 아니라 하셨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 은혜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직설적으로 고백합니다.“요일4:8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예수님의 의를 나에게 전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의롭다 하심, 즉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혀 의롭다 함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롬8;33) 이 진리를 부정하는 모든 거짓을 물리치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복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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