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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강 배교자 여로보암1세 admin 201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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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강 배교자 여로보암1세

신정의 범위를 멋대로 벗어난 독재자

 

<개역개정판>

(왕상 11:26)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

 

여로보암

 

여로보암은 ‘백성이 번성함’이라는 뜻으로 에브라힘지파이며,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입니다.(왕상11:26) 여로보암이 젊었을 때, 솔로몬에게 그의 부지런함과 용맹을 인정받아, 요셉지파의 노동감독으로 임명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로사람 선지자 아히야에게 열개지파의 지도자가 된다는 예언을 들었으며,(왕상11:29-31) 이 때문에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죽이려 했고, 그는 그 후로 애굽왕 시삭에게 망명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후계자인 르호보암에 반기를 들어 북이스라엘 열지파를 규합하여 새 왕조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의 결정적 실수는 에브라임경내의 세겜에 도읍을 정하고 예루살렘성전에 대한 신앙심을 막기위해 벧엘과 단에 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선지자 아히야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우상숭배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결국 그의 후손들은 결국 북녘의 강대국 앗수르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앗수르의 포로가 되는 비극을 격습니다. 여호와 신앙보다 금송아지 이데올로기를 더 중시한 결과입니다.

 

1.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로서, 에브라임지파입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자로서, 여호수와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배출한 지파의 조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후손인 여로보암은 어렸을 때부터 귀하게 자랐으며, 부지런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솔로몬은 그의 인물됨을 보고 밀로를 건축하고 다윗성을 수축하는 감독관으로 임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점 때문에 늘 유다지파의 후손들과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히야 선지자가 여로보암이 입고 있던 옷을 12개로 찢고 그 중 열 개를 여로보암에게 주며, 솔로몬에게서 10개지파를 빼앗아 너에게 주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때 여로보암은 마음이 우쭐해졌으며 사실상 이 때부터 반역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솔로몬이 이 사실을 듣고, 여로보암을 잡아 죽이려 하자, 여로보암은 급히 애굽왕 시삭에게로 피해, 솔로몬왕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여로보암은 훌륭한 지파출신이며, 귀하게 자라고 부지런한 일꾼이었으나, 우쭐한 마음에 죄악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2.북이스라엘의 제1대왕 여로보암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궁수축문제로 지지기반을 잃자, 이스라엘로 돌아와 10개지파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남북왕조로 분열되었고, 아히야의 예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분열의 원인은 솔로몬의 범죄와 르호보암의 우매한 강압정치 때문입니다.

결국 열지파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그리심산 동쪽기슭에 있는 세겜를 수도로 정하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맹주로서 22년간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제반 여건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삶을 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다윗과 같이 의로운 삶을 산다면 그의 나를 견고하게 세우겠다고 하셨으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악한 길로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노년에 우상숭배의 범죄를 행하여 남북으로 왕국이 분열되었지만,

여로보암은 청년기부터 우상숭배의 범죄를 행함으로 그의 후대 왕들은 끊임없는 쿠테타로 왕조가 멍들었으며 호세아왕때, 결국 앗수르에 의해 패망합니다.

3.금송아지를 섬기게 한 여로보암

세겜을 북왕국의 수도를 정한 여로보암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신앙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의 종교적 의미였습니다. 군사적으로는 독립적인 북왕국을 이루었지만,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남왕국에게 정통성을 빼앗길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단과 벧엘에 설치하고 레위인이 아닌 지파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고 절기도 변경하는 과오를 범합니다.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는 모세의 형 아론이 만든 것과 비슷한 우상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인들이 섬겼던 아피스와 모네비스는 황소를 모방한 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황소를 섬긴 것은 번식과 육체적인 힘을 얻기 위한 기복신앙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중동지역에는 소를 숭배하는 신앙이 있는데, 그것은 다산과 풍요를 주기 때문이었으며, 특히 가나안 지역에선 바알종교와 혼합되어 농사의 신으로 숭배되기도 합니다.

후대에 여로보암의 계보를 잇는 여로보암2세는 금송아지를 다시 만드는데, 예루살렘순례와 성전에 대한 사모함과 향수병을 막으려는 것이 첫째 목적이요, 백성들에게 평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고대왕들은 이러한 우상숭배와 종교적신앙을 이용하여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했으며, 애굽왕들은 태양신을 섬기는 방법으로 금송아지를 숭배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여로보암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왕이었으나, 배교한 왕이 되었습니다.

 

4.이스라엘 왕도와 여로보암 왕도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이었던 여로보암을 열지파의 왕으로 세우셨지만, 여로보암은 그러한 은혜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거스립니다. 특히 여로보암은 레위자손이 아닌 새 제사장을 임명하여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권위를 천명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성직자의 임무까지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왕하12:32) 여로보암을 비롯한 그의 후계자들에게 대해 신명기적 역사가들은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데, 왕국을 분열시키고, 황소숭배의식을 제정한 것은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죄라고 규정합니다.

여로보암은 초기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으나, 왕권을 쥔 다음부터는 율법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우상숭배에 빠졌으며,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자기중심적인 왕도를 걷게 됩니다. 마치 사울왕이 그랫듯이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도는 나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잘 섬기고 계명을 준수하고 주권에 복종하는 것입니다만,

여로보암의 왕도는 자신에게 왕권이 주어졌을 때, 교만에 빠져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대왕들의 실패원입니다.

왕권의 남용과 인간적인 수단을 앞세운 이념과 정책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나타난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신권이나 신정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념이나 왕권중심이 될 때,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교훈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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