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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4강 신의의 수호자 사독 | admin | 2010-0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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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강 신의의 수호자 사독 다윗의 위기와 시련을 지켜낸 제사장 <개역개정판> (삼하 15:27-29) 『[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28]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29]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 사독 사독은 제사장으로 다윗의 치세동안 왕권수호를 위해 공로를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에 반역했을 때 아비아달과 함께 궤를 탈출했으나 다윗의 권유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반란때까지 궤를 수호했는데, 이것은 혼란과 위기중에도 하나님의 신앙을 수호하려는 노력이며 신정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압살롬이 죽은 후, 아비아달과 함께 대제사장이 되었는데, 다윗왕의 아내 학깃의 소생 아도니야가 왕권찬탈모의를 할 때, 아비아달은 가담했으나, 사독은 반기를 들었습니다. 아도니야가 제사장 아비아달과 함께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 결국 다윗왕의 지시에 따라 나단선지자와 브나야와 함께 기혼에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역할도 감당했습니다. 이것 또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번영을 위해 정의와 진리편에 선 모범적 제사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언약궤를 수호한 사독 사독은 ‘의롭다’는 뜻으로 의롭고 신실한 인물이었으며,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후손으로 아히둡의 아들이었습니다. 압살롬반란시, 다윗이 충격속에 예루살렘을 빠져나갔고,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때에 다른 사람들은 압살롬에게 입신하여 영달을 꾀했지만, 사독은 세상명예를 포기하고 끝까지 다윗의 동행자가 됩니다. 결국 언약궤를 메고 다윗에게 가져야 주며 다윗을 위로하는 지혜로운 위로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반란으로 쫓겨나지만, 하나님앞에서는 쫓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성전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다윗의 권유를 받고, 사독은 압살롬이 왕으로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데,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다윗의 환궁을 준비하였으며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이처럼, 사독은 한번 품은 신의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신실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자신의 고난에 부하를 참여시킬 수 없다하여 사독을 돌려보내는 훌륭한 다윗왕 앞에 사독과 같은 훌륭한 신하가 나타납니다. 신실한 성도앞에는 신실한 협력자가 나타납니다. 2.왕권을 수호한 사독 사독은 다윗왕 말련에 왕위계승문제로 암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동료인 아비아달과 달리 다윗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정 때문에, 사랑 때문에 하나님과의 신의와 믿음을 저버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을 수 있는데, 사독이 아비아달과의 오랜 우정을 버리면서까지 다윗에게 충성하여 솔로몬에게 기름부습니다. 이 사건은 세상친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앞에서 신의와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끝까지 충성하는 자는 이렇게 축복을 누립니다. 3.신의(神意)를 수호한 사독의 후손들 이것 때문에, 사독의 후손들은 솔로몬이후 유다왕국 멸망 바벨론포로기 그리고 포로귀환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유일한 제사장 가문을 형성합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의 후손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인데, 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대제사장 사독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로,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후손이 됩니다. 즉, 포로귀환때,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땅으로 귀환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바벨론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며 파괴된 본토에 돌아와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독의 후예인 예수아와 제사장들은 바벨론의 일시적 안정보다는 황폐하였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영원한 평안과 안식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세차례에 걸쳐 포로귀환을 하는데, 총독 스룹바벨과 더불어 1차 포로귀환의 인솔자요 지도자역할을 감당합니다. 4.성전과 제사제도를 수호한 사독의 후예들 이스라엘 민족에게 포로귀환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사독의 후예들은 무너진 제단을 재건하는 것이 제일 먼저요 중요하다 생각했으며, 제단을 수축하되, 자기들 마음대로가 아니라, 모셉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단을 쌓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대로 제단을 쌓습니다. 성전재건의 목적도 중요하지만, 방법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안된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당시 가나안 본토에 밀려든 사마리안 혼혈족, 암몬인 에돔인 등 온갖 이방인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을 적대시하며 성전재건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어려움과 위기속에서도 사독의 후예인 예수아와 제사장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성전재건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또한 성전을 재건한 사독의 후예들은 규례에 따라 초막절을 지켰으며, 예배를 회복시킵니다. 예배처소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에 임하는 자들의 자세이므로 이스라엘의 절기만 지킨 것이 아니라, 상번제도 드렸으며 예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가운데 적용하는 실천적 삶을 살아갑니다. 5. 사독의 후예인 사두개인 사독의 후예들은 위기때마다 하나님신앙을 가지고 백성들을 신앙으로 지도하는 믿음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강복하시며 임하십니다. 그러나, 신구약중간기에 들어서면서 그의 후손들은 점점 정도를 벗어나기 시작하는데, 성전관리라는 특권을 이용해 악행을 일삼기 시작했으며, 특히 하스몬왕조때에 사두개인이라는 당파를 형성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꾸중을 듣는 사두개인의 기원이 되기도 합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인정하고, 역사서나 예언서 시가서 등등은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들에게 당신의 영감을 주셨다는 영감설을 부인하는 것이요, 결국 성경을 부인하는 비신앙적 태도와 다를바 없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정치적 세력이 된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따라 성경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이들은 현실만 인정할 뿐, 영의 세계나 천사나 사단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세와 부활, 최후의 심판, 지옥 등등을 인정하지 않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는데, 말이 신자이지 불신자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결국 신앙을 윤리적차원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도덕선생으로 이해하는 과오를 범하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사두개인은 종교집단이라기 보다는 정치세력에 더 가까웠는데, 그들중에 헤롯왕은 로마세력의 지지기반을 이용해 왕권을 찬탈했으며, 이것을 반대하는 바리새인들을 저항을 무마하고자 헤롯성전(세번째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주기도 하는 등, 정치적인 과오를 범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러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거룩과 성결함을 버리고 세속적인 이방종교와 문화를 묵인하는데 매우 관대해지게 되었으며 타락과 부패의 길을 걸어갑니다. 6. 나눔 : 정교분리와 연합 : 무엇이 옳은 것인가?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벧전 2:13-14)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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