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성경강좌

  • 홈 >
  • 양육 >
  • 구약인물성경강좌
구약인물성경강좌
제53강 구국의 여성 에스더 admin 2010-06-04
  • 추천 0
  • 댓글 0
  • 조회 557

http://chdeam.onmam.com/bbs/bbsView/92/631600

제53강 구국의 여성 에스더

‘죽으면 죽으리라’의 결단력있는 왕비

 

(에스더 4:1-8, 개정) 『[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3]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5]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6] 하닥이 대궐 문 앞 성 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에스더

 

에스더는 베냐민지파 아비하일의 딸이지만, 조실부모한 고아로 사촌오빠 모르드게의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본래 히브리어로 ‘하닷사’라는 이름이 있으나 페르시아식 이름인 에스더(Esther, ‘별’)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사왕 아하수에로 즉위 3년에 애굽과 바벨론을 토벌하고 즉위식과 더불어 180일동안 잔치가 벌어질 무렵, 왕의 명령을 거역한 와스디 왕비가 폐위되고, 모르드개의 사촌동생 에스더가 왕비가 됩니다. 당시 수산성 내에, 아말렉족 출신 하만을 주축으로 유다인 모르드개를 죽이는 일과 유대인들을 처형하는 일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쿠테타를 하는 일 등등의 사건이 있었는데, 왕비였던 에스더는 지혜있고 용기있는 고발로 하만과 아말렉족속을 진멸하고, 모르드개와 유대인의 구원받게 한 이야기입니다.

 

1.아하수에로의 황후 에스더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 왕으로, 일반역사서에는 크세르크세스(Xerxes, B.C.519-465)로 알려져 있으며 다리오왕을 이어 왕이 되었고, 그의 후계자는 아닥사스다입니다. 아하수에로가 즉위한지 3년에 즉위식과 180일동안의 잔치를 여는데, 즉위식은 즉위전에 전쟁(과 성과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즉위하며 통치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행사였습니다. 왕은 잔치의 절정으로 모든 신하앞에서 왕비의 아름다움을 보이고자 술에 취한 상태로 왕비를 불렀으나, 와스디 왕비는 거절하였고, 이에 신하들은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여 왕비의 폐위를 건의하였고 그대로 시행됩니다.

 

그러나 와스디의 폐위는 에스더에게 기회가 됩니다. 에스더는 본래 도금양나무의 뜻을 가진 ‘하닷사’라는 이름이 있는데, 페르시아에 거주하면서 ‘별’의 의미를 가진 에스더의 이름으로 사용하였으며 조실부모한 고아로서 사촌오빠인 모르드개의 손에 양육됩니다. 모르드개는 이름의 뜻대로 “마르둑을 경배하는 자”로 상황에 잘 적응하는 자였으며 고레스의 칙령에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않고 갈대아에 남은 이른바 “기회주의자”였으며, 이러헌 성격과 사고방식은 사촌여동생인 에스더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에스더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른 여자들보다 덜 치장하였지만, 왕의 마음에 들어 사랑을 받게 되었고 왕후의 자리를 오릅니다. 비록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이방결혼도 마다하지 않은 출세욕과 인간적인 생각으로 왕비가 되고자 애썼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고난과 죽음의 위기로 몰아가고 또한 이들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2.하만의 계락과 에스더의 결단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여러 방법으로 출세를 원했지만, 에스더만 왕비가 되었을 뿐, 모르드개는 신상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빅단과 세레스의 암살계획을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철천지 원수인 아말렉족속 아각사람 하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왕명(에3:3)에 의해 모든 백성이 하만에게 절하고 경의를 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모르드개는 하만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절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밝히듯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만에게 절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이전에 자신이 유대인임을 숨기고 살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만앞에서 유대인임을 밝히고 절하지 않은 것은 신앙적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행동으로 유대우월주의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결국 하만과의 극한 대립으로 이어집니다. 생각해보면 상관에 대한 공경으로 절하는 것을 거부한 모르드개나 허영심에 차 모르드개에게 분을 낸 하만이나 비슷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결국 하만은 모르드개에 대한 처벌과 유대인 전체에 대한 학살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데, 페르시아의 대적을 없애기 위해 왕의 환심을 사고, 왕의 인장을 돈으로 얻어내어 모르드개와 유대인의 학살계획을 진행시시키려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르드개는 굵은 베옷을 입고 대궐 문앞에서 통곡하고 왕비인 에스더에게 이를 막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허락없이 왕앞에 나가면 죽임을 당할 수 있기에 거절합니다만, 이것은 모르드개로부터 출세지향적인 교육을 받아온 에스더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잠잠하여도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을 얻을 것이며 너는 멸망하리라”며 압력을 가하고,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백성에게 삼일동안 금식기도를 요청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심정으로 왕앞에 나갑니다.

이 시점은 모르드개나 에스더에게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궁지로 몰아 넣으심으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동시대의 느혜미야나 다니엘과 비교해보면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타협적이고 혼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고서야 올바른 방향을 찾기 시작합니다. 모르드개는 말할 것 없이 에스더는 시녀와 함께 삼일동안 금식한 후, 왕앞에 나갑니다. 초최한 모습이었지만, 하나님은 왕의 마음에 에스더를 사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부어 주셨고, 목숨을 건집니다. 이제 유대인들을 위한 간청만 남았는데, 에스더는 지혜롭게 몇차례나 말하기를 연기하고 잔치를 베품으로 왕의 마음을 너그럽게 합니다. 둘째날 잔치에 에스더는 그녀의 소원을 말하였고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죽음앞에서 회개하며 죽으면 죽으리이다 는 심정으로 나간 에스더의 신앙적 행동은 무시무시한 사태를 역전시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신앙은 다니엘의 세친구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불가능하지만, 회개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르며 담대히 나가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3,하만의 처형과 부림절 제정

 

왕과 왕비와 함께 잔치에 초대된 것에 한껏 부풀어 있던 하만에게 에스더의 말 한 마디는 청천병력같은 것이었습니다. 왕이 노하여 밖에 나간사이, 왕비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오히려 왕비를 강간하려는 것으로 오인되었습니다. 이때 하르보나라는 내시가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 나무를 세운 것을 고하였고, 왕은 그 나무에 하만을 달게 합니다.

 

하만의 몰락은 모르드개의 성공을 의미합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의 자리를 대신하였으며 에스더는 왕에게 유대인의 대적을 멸하도록 하는 조서를 내리게 했으며, 하만의 열아들과 아말렉족속을 멸하도록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13일 하루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조서를 하루 더 연장하여 시행하였으며, 수산성에서만 500인의 대적을 멸하였다 기록합니다. 이 역사가운데 특징적인 것은 계속되는 아말렉 족속진멸에도 불구하고 진멸된 자의 재산은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인데,(에9:10ff) 이것은 약탈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임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유대인들은 아빕월 13일과 14일은 쉬면서 잔치를 베푸는 전례가 생겼으며, 모르드개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조서를 내려서 아달월 14일과 15일을 지키라 명하고 오늘날까지 부림절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부림절은 하만이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 제비(부르)를 뽑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능력으로 도리어 멸망당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부림절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승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모르드개는 그의 조서에서 부림절을 지키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유대인이 대적의 손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제어함으로써 슬픔이 기쁨으로 애통이 즐거움으로 변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으므로 잔치를 베풀고 예물을 주고, 구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은혜받은 자가 받은 바, 그 은혜를 독점하지 않고 나누어 주는 것이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비록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까지도 보호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날 모든 유대의 지파를 불러 모으실 때, 베냐민 지파역시 그들 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림절 잔치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을 물리치시고 그의 백성들에게 승리와 잔치를 허락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제54강 고난의 승리자 욥 사진 admin 2010.06.06 0 575
다음글 제52강 애국의 선지 느혜미야 사진 admin 2010.05.25 0 618